천지왕본풀이 수명장자
한국 도깨비의 원형으로 정령

정의
한국 도깨비의 원형으로 정령, 곡식을 두드리는 나무 농기구에서 비롯되었다.
서사
「천지왕본풀이」는 제주도의 무속의례 초감제(初感祭)에서 전승되는 창세신화로, 천지개벽에서 시작해 일월 조정, 이승과 저승의 분리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질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풀어내는 서사무가다. 하늘의 신격 천지왕이 지상에 내려와 총명부인과 인연을 맺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대별왕과 소별왕이 해와 달을 하나씩 정리하고 이승과 저승을 나누어 차지하는 것이 이 신화의 골격이다. 그러나 이 거대한 창세 서사의 첫머리에, 천지왕이 지상에 내려오기도 전부터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한 인물이 있다. 수명장자다.
수명장자의 첫 번째 특징은 그가 신격보다 먼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해와 달이 둘씩 떠 있어 인간이 제대로 살 수 없던 때, 아직 천지의 질서가 완성되지 않은 혼돈의 시간에 수명장자는 이미 지상에서 많은 곡식과 재화를 소유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신연우는 이 사실에 주목하며, 수명장자가 범상한 인간이 아니며 적어도 기존의 신격에 버금가는 존재임을 암시한다고 분석한다. 창세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것은 그가 단순히 나쁜 인간이 아니라 세계의 질서 바깥에서 먼저 자리를 잡은 존재임을 뜻한다. 선이 세계를 만들기 전에 악이 먼저 있었다는 이 발상은 수명장자를 한국 신화 안에서 가장 이질적인 자리에 놓는다.
수명장자의 악행은 거대하지 않다. 그것이 그를 더 무서운 존재로 만드는 자리다. 그는 가난한 이에게 쌀을 빌려줄 때 모래를 섞어 주고, 연로한 부모에게 하루 한 끼밖에 밥을 주지 않으며, 죽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총명부인이 천지왕을 대접하기 위해 수명장자에게 쌀을 빌리러 갔을 때도 그는 쌀에 모래를 섞어 주었다. 첫술에 돌을 씹은 천지왕이 수명장자의 악행을 전해 듣고 그 집을 불태워 벌을 주었다는 기록이 이 장면의 결말이지만, 정작 수명장자 자신은 그 벌에 동요하지 않는다. 신연우는 수명장자의 이 악행들을 두고 “사소하고 일상적이지만 근원적”이라고 분석한다. 전쟁이나 재앙의 차원이 아니라, 이웃의 결핍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가족과 조상에 대한 마땅한 도리를 외면하는, 그러니까 인간의 일상 안에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악이라는 뜻이다.
천지왕의 정치 시도가 이 항목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면이다. 하늘의 신격이 지상의 악인을 직접 정치하러 내려왔지만, 수명장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천지왕이 일만 군사를 거느리고 흉험을 주어도 수명장자는 동요하지 않는다. 솥이 걸어다니고 소가 지붕을 넘어다니는 이상한 일이 벌어져도 그는 멀쩡하다. 천지왕이 마침내 수명장자의 머리에 철망을 씌워 고통스럽게 하자, 수명장자는 자기 종에게 도끼로 자기 머리를 깨버리라고 명한다. 신의 권능이 그 앞에서 무력해지는 이 장면이 수명장자를 단순한 악인이 아닌 신격에 버금가는 존재로 만드는 자리다. 천지왕의 정치는 실패로 끝난다. 신연우는 이 실패가 의미심장하다고 분석한다. 천지왕이 수명장자를 처단하지 못하고 지상 여인과 결연해 다음 세대를 얻는 것은, 인간 세상의 악을 천상의 존재만으로는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신화적 인식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수명장자의 정치는 결국 다음 세대인 소별왕에게로 미루어진다. 속임수를 써서 이승을 차지한 소별왕이 이승에서 수명장자의 육신을 모기, 파리, 빈대로 변형시키며 부분적 정치를 완수한다. 그러나 이 결말이 가장 중요한 점을 담고 있다. 수명장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모기와 파리와 빈대는 지금도 인간의 일상 안에 있다. 형태가 바뀌었을 뿐 그는 인간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살아남았다. 천지왕도 처단하지 못했고, 소별왕도 완전히 없애지 못한 채 형태만 바꿔놓은 것이다. 창세가 완성된 뒤에도 수명장자는 여전히 인간의 일상 안에 있다. 세계의 질서가 완성된 뒤에도 근원적 악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이 발상이, 「천지왕본풀이」가 단순한 창세신화를 넘어 인간의 세계 인식을 담은 서사무가로 읽히는 것이지 않을까.
특징
수명장자의 특징은 세 가지 차원에서 드러난다. 세계의 질서 이전에 먼저 자리를 잡은 선재성, 천지왕의 신적 권능이 그 앞에서 무력해진다는 사실, 그리고 완전히 소멸하지 않고 형태를 바꿔 인간의 일상 안에 살아남는 변형적 생존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가 수명장자를 단순한 악인이 아니라 한국 신화 안에서 가장 끈질긴 악의 원형으로 만드는 자리다.
첫 번째는 선재성이다. 수명장자는 천지왕이 지상에 내려오기 전부터 이미 존재한다. 해와 달이 둘씩 떠 있어 인간이 제대로 살 수 없던 시간, 아직 세계의 질서가 완성되지 않은 혼돈 속에서 그는 이미 곡식과 재화를 소유한 채 지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신연우는 이 선재성이 수명장자를 범상한 인간의 자리가 아닌 기존 신격에 버금가는 위계에 놓는다고 분석한다. 선이 세계를 완성하기 전에 악이 이미 세계 안에 있었다는 이 발상은, 「천지왕본풀이」를 단순한 창조 서사가 아니라 창조의 불완전함에 관한 서사로 읽히게 하는 핵심 자리다. 수명장자의 악이 창세 이후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창세와 함께, 아니 창세 이전부터 이미 존재했다는 사실이 이 신화의 가장 이례적인 발상이다.
두 번째는 신성의 무력화다. 「천지왕본풀이」에서 가장 흥미로운 자리는 천지왕이 수명장자 정치에 실패한다는 사실이다. 한국 창세신화 안에서 신격이 지상의 악인을 처단하지 못하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천지왕은 일만 군사를 거느리고 내려왔고, 갖은 흉험으로 수명장자를 압박했으며, 마침내 그의 머리에 철망을 씌워 고통을 주었다. 그러나 수명장자는 끝내 굴복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종에게 도끼로 자기 머리를 깨버리라고 명했다. 신연우는 이 실패가 의미하는 바를 짚어내며, 천상의 존재가 인간 현실의 악을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신화적 인식이 이 장면 안에 담겨 있다고 분석한다. 창세신이 창조한 세계 안에 창세신이 처단할 수 없는 악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 이 역설이 「천지왕본풀이」가 다른 창세신화와 결정적으로 갈리는 자리다. 천지왕이 수명장자를 정치하지 못하고 지상 여인과 결연해 다음 세대를 얻는 것은, 근원적 악의 처단이 천상의 권능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인간과의 결합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신화적 인식을 보여준다.
세 번째는 변형적 생존이다. 수명장자는 결국 소별왕에 의해 모기, 파리, 빈대로 변형되는 방식으로 부분적 정치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 결말이 소멸이 아니라는 것이 중요하다. 모기와 파리와 빈대는 지금도 인간의 일상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다. 창세가 완성된 뒤에도, 이승의 질서가 마련된 뒤에도, 수명장자는 형태를 바꿔 인간의 곁에 남는다.¹ 박종성은 이 점을 두고 수명장자의 징치가 완전한 소멸이 아니라 형태 변환이라는 점에서, 지상의 악이 근원적으로 사라질 수 없다는 신화적 세계 인식이 담겨 있다고 분석한다. 이 세계 인식은 지금의 이승이 혼탁하고 불완전한 이유를 설명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소별왕이 속임수로 이승을 차지했기에 이승법이 맑지 않다는 서사와 함께, 수명장자의 악이 일상 안에 지속된다는 서사가 「천지왕본풀이」 안에서 나란히 작동한다. 이 두 자리가 겹쳐지면서, 이승의 혼탁함이 단 하나의 원인이 아니라 여러 층위의 불완전함이 중첩된 결과라는 신화적 인식이 분명해진다.
수명장자는 창세보다 먼저 있었고, 창세의 신격도 그를 완전히 처단하지 못했으며, 처단된 뒤에도 형태를 바꿔 살아남는다. 근원적 악이란 어느 한 시점에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질서 안에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로 돌아오는 것이라는 발상, 즉 이것이 「천지왕본풀이」가 수명장자라는 인물을 통해 던지는 질문이다.
변형
「천지왕본풀이」는 채록본에 따라 수명장자를 다루는 방식이 다르게 나타난다. 수명장자의 징치 이야기가 아예 등장하지 않는 채록본도 있고, 천지왕이 수명장자를 징치하는 데 성공하는 채록본과 실패하는 채록본이 공존한다. 징치의 주체도 천지왕 단독인 경우와 소별왕이 담당하는 경우로 갈린다. 박봉춘 구연본에서는 소별왕이 이승을 차지한 뒤 수명장자의 육신을 모기·파리·빈대로 변형시키는 방식으로 징치가 완수되지만, 다른 채록본에서는 천지왕이 수명장자의 집을 불태워 벌을 주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징치의 성공 여부와 주체가 채록본마다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이 오히려 수명장자의 근원적 위치를 드러낸다. 그를 어떻게, 누가, 얼마나 처단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신화 공동체 안에서 합의되지 않은 채 열려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의 다른 창세신화에서 수명장자에 대응하는 인물로는 함경도 무가 「창세가」의 거인 악인 계열과 경기도 「시루말」의 악인 모티프를 들 수 있으나, 수명장자처럼 창세 이전부터 선재하며 천지왕의 직접적 정치 대상이 되는 동시에 그 정치가 실패로 끝나는 사례는 「천지왕본풀이」 외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 점에서 수명장자는 한국 창세신화 안에서 가장 독보적인 악의 형상이라 할 수 있다.
창작 활용 포인트
수명장자를 현대로 끌어오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는 이미 우리 주위에 있기 때문이다. 창세 이전부터 존재했고, 신의 권능이 무력해지고, 모기, 파리, 빈대로 형태를 바꿔 살아남은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일상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수명장자를 현대의 캐릭터로 옮길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그의 외형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는 매혹적이어야 한다. 사람들이 시선을 빼앗기고,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그를 따르고 싶어지게 만드는 인물이어야 한다.
현대의 수명장자는 인플루언서나 아이돌 등등, 모든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 인물이다. 매혹적인 외형과 언변, 그리고 그 아래를 가득 채운 위선이 그를 정의한다. 그는 권력과 명예를 갈망하지만 그 갈망을 직접 드러내지 않는다. 자기는 그저 진실을 말할 뿐이라는 표정으로, 자기는 그저 좋은 것을 나눌 뿐이라는 얼굴로, 사람들의 결핍을 정확히 알아보고 그 결핍을 향해 손을 내민다. 가난한 자에게 모래 섞은 쌀을 빌려주던 수명장자가 현대에 오면 결핍을 알아보고 위로하는 척 그 결핍을 더 깊이 파고드는 인물이 된다. 그의 가장 강한 능력은 악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을 악에 물들이는 것이다.
그의 악은 거창하지 않다. 이것이 그를 더 무서운 존재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전쟁을 일으키거나 재앙을 부르는 것이 아니다. 개미집을 아무렇지 않게 망가뜨리는 것, 무리를 이루어 한 사람을 슬며시 배제시키는 것, 자기가 배제를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끝내 인정하지 않는 것. 신화 안의 수명장자가 부모에게 하루 한 끼만 주고 조상 제사를 지내지 않는 사소한 악행으로 사람들을 괴롭혔듯, 현대의 수명장자는 일상의 결을 은근하게 더럽히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 사소함이 그를 처단할 수 없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엇을 근거로, 무엇을 명목으로 그를 처단할 것인가. 천지왕이 그를 정치하지 못했듯, 현대의 어떤 제도와 규범도 그를 완전히 정치하지 못한다.
이 캐릭터를 들여다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명장자는 우리 바깥에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우리 모두의 안에 있는 근원적 악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거울이다. 우리가 모르는 척 망가뜨린 개미집이 있고, 우리가 동조하거나 외면한 배제가 있고, 우리가 자기 이익을 위해 흘린 위선이 있다. 수명장자를 캐릭터로 들여다볼 때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그의 얼굴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얼굴이다. 창세 이전부터 있었고 신도 처단하지 못했으며 형태를 바꿔 일상 안에 살아남은 그가 매혹적인 이유는, 그가 낯선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낯익고 가까운 자리에 있는 존재가 누구보다 강력한 빌런이 된다.
이 캐릭터가 한국 서사 안에서 매력적인 빌런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선과 악의 경계를 허문다는 점에 있다. 그는 악인이지만 매혹적이다. 그를 따르고 싶은 충동과 그를 처단하고 싶은 분노가 같은 자리에서 작동한다. 수명장자를 완전히 처단하지 못하는 것이 천지왕의 한계가 아니라 인간의 한계이듯, 그를 거부하지 못하는 것도 우리의 한계다. 우리 안에 그와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나쁘고 가장 매혹적인 이 존재를 서사 안에서 정면으로 다룰 때, 그 서사는 악의 징벌이 아니라 악의 해부가 된다. 「천지왕본풀이」가 수명장자를 창세 이전부터 존재한 근원적 악으로 설정한 까닭이 어쩌면 이것일지도 모른다. 악은 창세 이후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세계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세계 안에 있었다는 것. 그 악을 들여다보는 것이 곧 세계를 이해하는 일이라는 것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