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일제대귀일의 딸
본처를 죽이고 측간신으로 좌정한 악인형 여성신

신령은 세계의 질서를 창조하거나 관장하는 존재로서 인간의 삶에 직접 개입하는 신격이다. 그러나 신령이 반드시 착한 것은 아니다. 그 가운데는 탐욕과 살인을 통해 세계를 시험하고, 결국 가장 낮은 곳에 머물러 질서의 이면을 담당하는 존재도 있다.
노일제대귀일의 딸은 이 기준에 부합한다. 오동나라 출신의 여성으로, 남선비를 유혹해 재산을 빼앗고 그의 본처를 살해하였으며, 전실 자식 일곱을 죽이려다 들통 나 측간에서 목을 매어 죽는다. 그 뒤 측간신(厠間神), 측도부인(厠道夫人)이 되어 오방장군·조왕신·문전신 등 집안 신들의 체계 안에서 가장 불결하고 낮은 자리를 차지한다.[1]
개요
제주도 큰굿의 제차 가운데 집안 신들의 내력을 풀어내는 〈문전본풀이〉에 등장하는 악인형 여성신이다. 남선비의 첩으로 시작해 본처를 죽이고 본부인 행세를 하다가, 막내아들 녹디셍인에게 정체가 발각된 뒤 죽어 측간신이 되는 존재다. 제주도 무속 신화 전체를 통틀어 드물게 나타나는 대표적인 악인형 캐릭터로 꼽히며, 탐욕·유혹·거짓·살인이라는 네 가지 악행의 전형을 모두 갖춘 인물로 평가된다.[2]
그녀의 이름은 이본마다 조금씩 달리 기록되어 있는데, 노일저대귀일의 딸, 노일저대칩, 귀일의 딸 등의 형태로도 나타난다. 이처럼 이름이 유동적이면서도 '노일저대'라는 핵심 명칭만큼은 일관되게 유지된다는 점에서, 이 존재가 오랜 구연 전통 안에서 단단히 자리 잡은 신격임을 알 수 있다.
유래와 형성
노일제대귀일의 딸은 오동나라 출신이다. 남선비와 산 언덕 너머 수수깡으로 만든 초막에서 지내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로 미루어 자연력에 의존한 채집 생활을 한 부족이나, 음식문화의 발달이 늦은 집단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된다.[3] 배를 타고 제주도 본토에 들어온 외래인이자 외래신이기도 한 그녀는, 여산부인이 조왕신으로 좌정하는 토착 신격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그녀가 남선비를 처음 만나는 방식은 이본마다 다르다. 처음부터 첩이 되어 재산을 빼앗거나, 아양을 떨며 그를 유혹한 뒤 노름으로 돈을 빼앗거나, 음식값으로 가산을 탕진케 하는 등 수법은 조금씩 다르지만 결과는 언제나 같다. 남선비는 재산과 배와 눈을 모두 잃고 초막에서 겨죽으로 연명하는 신세가 된다. 탐욕이 유혹을 낳고, 유혹이 파탄을 낳는 구조가 서사의 첫 번째 층위를 이룬다.
특징
악행의 구조: 탐욕에서 살인으로
그녀의 악행은 탐욕에서 시작해 유혹 → 거짓 → 살인 → 가정 파괴의 순서로 전개된다. 남선비의 본처인 여산부인이 남편을 찾아 오동나라로 왔을 때, 그녀는 형님이라 부르며 극진히 대접하는 척하다가 목욕을 권유해 연못에 밀어 넣어 죽인다. 이후 여산부인의 옷을 입고 본부인 행세를 하며 남선비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온다.[4]
남선비의 집에 들어온 뒤에도 그녀는 거짓을 멈추지 않는다. 꾀병을 앓는 시늉을 하고, 남편을 속여 점쟁이로 가장해 '일곱 아들의 간을 먹어야 병이 낫는다'는 거짓 점을 쳐준다. 자신이 직접 살인을 행하는 대신 남선비를 살인 교사의 도구로 삼는 방식이다. 이처럼 그녀의 악행은 언제나 상대방의 약점과 상황에 맞춰 조정되며, 그 유연함이 오히려 더욱 섬뜩한 인상을 남긴다.
변신과 이중적 자아
노일제대귀일의 딸은 서사 전체에 걸쳐 크게 네 차례 변신한다. 처음 두 번은 여산부인의 옷을 입는 것과 점쟁이 복장을 갖추는 것으로, 둘 다 표면적 위장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불완전한 변신이야말로 그녀의 핵심 속성이다.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고 상대방이 보고 싶어 하는 얼굴을 제시하는 능력 말이다. 한량들과 어울려 춤추던 여성이 순식간에 조신한 큰부인으로 돌변하는 모습은, 극히 상반된 이중적 자아를 지닌 존재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변신 능력은 끝내 한계를 드러낸다. 막내 녹디셍인은 처음부터 그녀가 어머니가 아님을 꿰뚫어 보고, 돼지 간을 사람의 간으로 속이는 맞불 작전을 펼쳐 그녀의 거짓을 폭로한다. 상대의 속임수를 더 정교한 속임수로 제압한다는 구조 속에서, 그녀의 악행은 결국 상대신의 능력을 드러내기 위한 통과의례적 장치로 기능하기도 한다.
측간신으로의 좌정: 추락의 신화학
측간으로 도망가 목을 매어 죽은 그녀의 시신은 형제들에 의해 갈가리 찢기고, 그 각 부분은 혐오스러운 생물과 무생물로 변한다. 양 다리는 측간의 디딜팡이 되고, 머리는 돼지 밥그릇인 돗도고리가 되며, 몸통은 가루로 빻아져 이·모기·각다귀·벼룩 등이 된다. 악행이 극에 달했던 자가 가장 비천한 것들의 집합체로 해체되는 이 장면은, 권선징악이라는 서사 논리가 신체적 형상으로 구현되는 순간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결국 신이 된다. 악행이 죄로서 단죄되면서도 동시에 신격으로 이어진다는 역설은, 무속 신화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인간 세계의 더럽고 낮은 영역 역시 신이 돌보고 있다는 것이다. 측간신의 고약한 위협에서 피하기 위해 변소에 가기 전 기척을 내야 한다는 민간 풍속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창작 포인트
노일제대귀일의 딸을 단순히 악녀로만 읽으면 입체성이 사라진다. 그녀의 악행은 순수한 사악함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새로운 집안에서 결코 온전히 자리 잡을 수 없다는 소외의식, 혹은 두려움과 연관되어 있다. 본처의 자식들이 죽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그녀를 배척할 때, 그녀가 느꼈을 소외감이 살인 계획으로 이어지는 심리적 경로라고 할 수 있다.
불완전한 변신이라는 모티프도 주목할 만하다. 그녀는 어떤 모습을 취해도 결국 '가짜'다. 이는 외래신이 토착 공동체에 침투했으나 결코 동화될 수 없는 존재임을 암시하는 동시에, 정체성이 불안정한 존재가 갖는 특유의 위험성을 형상화한다.
여산부인과의 대비 구조도 창작적으로 풍부한 가능성을 품는다. 높은 농경문화를 대표하며 무속 사제자의 능력을 갖춘 여산부인과, 채집과 사냥 수준에 머무는 외래 여성 사이의 충돌은 단순한 처첩 갈등을 넘어, 두 개의 문화, 두 개의 신격 체계가 맞부딪히는 사건으로 읽힐 수 있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더 '강해야 했던' 쪽이 먼저 죽는다는 모순이, 이 신화에 비극적 긴장을 부여한다.
각주
- 현용준, 『제주도무속자료사전』(서울: 신구문화사, 1980), 398–415.
- 이수자, 『제주도 무속을 통해 본 큰굿 열두거리의 구조적 원형과 신화』(서울: 집문당, 2004), 282–288.
- 이지영, 「〈문전본풀이〉에 나타난 악인형 여성의 전형성 연구」,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12 (2006): 213.
- 현용준, 앞의 책, 398–415; 길태숙, 앞의 논문, 332–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