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별왕·소별왕
이승과 저승을 가른 천지왕의 두 아들

신령은 세계의 질서 자체를 창조하거나 관장하는 존재로서 인간의 삶에 직접 개입하는 신격이다. 특정 자연현상의 반영도, 개인의 원한도 아닌, 우주적 원리의 보유자라는 점이 핵심이다.
대별왕과 소별왕은 이 기준에 부합한다. 천상의 신격과 지상의 여성 사이에서 태어나 재탄생 의례를 통해 거듭난 뒤, 이승과 저승의 법도를 직접 창조하고 세계를 질서화한 존재다. 이들의 행위는 자연현상의 인격화도, 원한의 발현도 아니라 세계 운행의 원리 그 자체를 세우는 창세의 행위다. 다만 신령이라는 분류가 제주도 무속 신앙 체계에서 이들이 갖는 위계를 완전히 포괄하지는 못한다는 점을 함께 밝혀 둔다.
개요
제주도 큰굿의 첫 번째 제차인 초감제(初監祭)에서 구연되는 「천지왕본풀이」의 주인공이다. 천지왕의 두 아들로, 형 대별왕은 저승을, 동생 소별왕은 이승을 차지하게 된다. 이들이 벌이는 꽃 피우기 내기는 제주도 무속신화 전체를 관통하는 '생명현상의 쇠퇴와 갱신'이라는 주제의 출발점이다.[1] 둘씩 떠 있는 해와 달을 활로 쏘아 하나씩 떨어뜨림으로써 지상의 인간들이 타죽고 얼어죽는 고통을 해결하는 영웅적 행위자이기도 하다.[2]
유래와 형성
천지왕이 지상으로 내려온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하나는 천지개벽 이후 하늘에 해와 달이 두 개씩 생겨나 인간들이 극심한 고통을 겪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수명장자라는 지상의 악인을 징치하기 위함이다.[3] 천지왕은 지상의 여성과 혼인한 뒤 사흘 만에 다시 하늘로 올라갔고, 홀로 남은 어머니가 두 형제를 낳아 길렀다. 성장한 형제는 아버지가 남긴 박씨를 심어 하늘까지 뻗은 줄기를 타고 옥황에 올라가 부자관계를 인정받는다.
이 과정에서 형제는 아버지 무릎에 앉아 똥오줌을 싸며 어린아이 소리를 내고, 이어 큰어머니의 속바지 한쪽으로 들어가 다른 쪽으로 나오는 기묘한 행동을 한다.[4] 이는 전 세계 원시부족의 통과의례에 보편적으로 등장하는 재탄생 상징이다. 아기로 되돌아가 다시 태어나는 것, 자궁으로 돌아갔다 나오는 것 모두가 지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정신적 탄생을 뜻한다.[5]
특징
꽃 피우기 내기와 세계 분할
형제는 아버지로부터 이승과 저승 중 하나를 차지하라는 분부를 받는다. 이승을 원했던 소별왕의 이의 제기로 꽃 피우기 내기가 시작된다. 대별왕은 번성꽃을, 소별왕은 검뉴울꽃(시든꽃)을 피워낸다. 내기에서 밀린 소별왕은 잠자기 내기를 새로 제안하고, 형이 잠든 사이 꽃사발을 몰래 바꾼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대별왕은 저승으로 떠나며 이승과 저승의 법도를 각각 규정한다.
이 장면은 단순한 속임수 이야기가 아니다. 번성꽃은 생명현상이 극대화 된 상태를, 검뉴울꽃은 생명현상의 쇠퇴와 유한성을 상징한다. 소별왕이 검뉴울꽃을 번성꽃과 바꾼 행위는 낡고 쇠퇴한 것을 충만한 생명력으로 교체하는 신화적 사건으로 읽힌다.
하늘 아버지, 땅 어머니의 구조
형제의 아버지가 천상의 존재이고 어머니가 지상의 여성이라는 설정은 영웅 탄생담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천부지모' 화소다. 하늘의 존재만으로는, 그리고 땅의 존재만으로는 지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지상의 문제의식은 어머니인 땅에서 비롯되고, 그것을 해결하는 초월적 능력은 하늘인 아버지로부터 온다. 이 두 요소를 하나로 아우르는 아들의 존재가 바로 대별왕과 소별왕이다.
상보적 관계
대별왕과 소별왕은 쌍둥이다. 그들의 다름은 하나로 합쳐질 때 온전해진다. 대별왕은 순리를 받아들이는 인물이고, 소별왕은 순리를 바꾸는 인물이다. 대별왕이 생명현상을 생산하고 창조하는 존재라면, 소별왕은 그것을 운용하고 활용하는 존재다. 이 두 역할이 맞물릴 때 생명의 순환이 온전히 실현된다.
창작 포인트
대별왕과 소별왕을 단순히 선악의 구도로 읽으면 그 신화적 깊이를 놓친다. 꽃사발을 바꾼 소별왕의 행위는 신화 문맥 안에서 단죄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살아 있는 인간의 이승이 작동하는 방식, 욕망과 인위적 노력이 뒤섞인 세계의 속성 그 자체를 대변한다.
형제가 서로 다른 세계를 차지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번성꽃을 피운 자가 저승을 갔고, 꽃을 바꾼 자가 이승을 얻었다. 더 순수하고 완전한 생명력을 가진 존재가 오히려 저승의 주인이 된다는 역설은, 저승이 단순한 죽음의 공간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이 잠드는 공간임을 암시한다.
쌍둥이이면서 서로 다른 이 두 존재의 관계는 빛과 어둠, 삶과 죽음, 창조와 운용처럼 세계를 구성하는 두 원리의 긴장을 형상화하는 데 적합하다. 어느 한쪽이 없으면 나머지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설정은, 대립하는 두 존재가 사실은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이야기에 강한 서사적 근거를 부여한다.
각주
- 강진옥, 「'꽃의 신화학' 서설: 제주도 무속의 신화체계 탐색을 위한 시론」, 『구비문학연구』 55 (2019): 6.
- 신연우, 「제주도 대별왕·소별왕 재탄생담의 신화적 의의」, 『영주어문』 28 (2014): 47.
- 신연우, 앞의 논문, 49.
- 이무생 구연, 「천지왕본」, 김헌선, 『한국의 창세신화』 (서울: 길벗, 1994), 450; 신연우, 앞의 논문, 45에서 재인용.
- 신연우, 앞의 논문, 54–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