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문대할망
밥 짓고 빨래하는 일상이 그대로 제주를 빚은 거인 여신

정의
설문대할망은 밥 짓고 빨래하고 오줌 누는 일상의 행위가 그대로 제주의 지형을 빚어내는 창조 행위가 되는 신격이다. 제주도를 만든 거인 여신으로 제주 각지에 전승되며, 신성과 일상의 경계가 처음부터 없었다는 점에서 한국 신화 안에서 가장 독특한 창조신의 자리를 차지한다.
서사
치마폭에서 흘러내린 흙이 오름이 되다
설문대할망이 제주를 만든 방식은 다른 창세신화와 결정적으로 다르다. 의도가 없었다. 치마에 흙을 담아 나르다 터진 구멍으로 흘러내린 흙이 쌓여 360여 개의 오름이 되었고, 마지막으로 쏟아부은 흙이 한라산이 되었다. 오줌 줄기로 바다가 생기고 섬이 떨어져 나갔다. 한라산에 앉아 빨래하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거대한 폭풍처럼 바다가 요동쳤다. 강지연은 할망의 행위에 의도성이 없으며 제주 지형의 창세 원리가 신의 행적을 자연 그대로 담아낸 천연의 원칙을 따른다고 분석한다. 설문대할망에게 창조는 목적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이었다.신·자연·인간이 분리되지 않는 몸
그녀의 몸은 제주 그 자체였다. 한라산을 베개 삼아 누우면 발끝이 관탈섬에 닿았고, 성산봉을 빨래바구니 삼아 빨래를 했다. 탐라 백성들은 그녀의 부드러운 살 위에 밭을 갈았고, 그녀의 털은 풀과 나무가 되었다. 오줌을 쏠 때마다 해초와 문어, 전복, 소라, 물고기가 나와 바다를 풍성하게 했고 그때부터 물질하는 잠녀가 생겨났다. 강지연은 설문대할망이 제주의 자연을 자유자재로 다루면서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짚는다. 할망의 행위 자체가 자연의 흐름과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명주 99통의 결핍이 멈춰 세운 다리
이 거대한 존재에게도 불가능한 것이 있었다. 키가 너무 커서 옷을 제대로 입을 수 없었던 그녀는 탐라 백성들에게 속옷 한 벌만 만들어 주면 육지까지 다리를 놓아주겠다고 했다. 속옷 한 벌에 명주 100통이 필요했으나 백성들은 99통밖에 모으지 못했다. 속옷은 미완성으로 남았고 다리도 완성되지 않았다. 가장 거대한 신격이 인간 세상의 가장 작은 결핍 앞에서 멈춰 선 것이다.아들들을 먹이다 백록담 가마솥에 빠지다
설문대할망의 죽음은 비극적이다. 흉년에 식구가 많아 끼니를 잇기 어렵게 되자, 그녀는 오백 아들을 먹일 죽을 끓이다 백록담 가마솥에 빠져 죽는다. 마지막에 돌아온 막내가 솥에서 어머니의 뼈를 발견하고 통곡하며 바위가 되고, 형들도 사실을 알고 모두 바위로 굳는다. 영실의 499장군과 차귀섬의 막내가 그것이다. 창조신이 자기 아들들을 먹이려 죽을 끓이다 죽는 이 결말이, 신성과 일상의 경계가 없던 존재의 이야기임을 가장 강렬하게 보여준다.
특징
존재 방식 그 자체가 창조
설문대할망의 지형 창조에는 목적이 없다. 치마에서 흙이 흘러내려 오름이 되고, 배설로 바다가 생기고, 빨래하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폭풍이 일었다. 강지연은 그 창세 원리가 신의 행적을 자연 그대로 담아낸 천연의 원칙을 따른다고 본다. 창조가 의도적 행위가 아니라 존재 방식 그 자체라는 발상이 설문대할망을 다른 창세신화 신격들과 갈라놓는다.신성의 소멸이 아닌 신성의 일상화
설문대할망은 시간이 흐르며 배설물로 지형을 만들거나 죽을 끓이다 빠져 죽는 존재로 희화화된다. 학계는 이를 여신의 위상 축소로 설명하지만, 강지연은 다르게 읽는다. 신성과 일상의 대립이 설문대할망 안에서 처음부터 해체되어 있었기에, 희화화는 신성의 소멸이 아니라 신성이 가장 일상적인 자리에까지 내려온 것이라는 분석이다. 밥 짓고 빨래하는 할머니가 창조신이라는 사실이 모순이 아니라 이 신격의 본질이다.신·자연·인간 합일의 에코토피아
설문대할망의 몸이 곧 제주의 지형이고, 탐라 백성은 그녀의 살 위에 밭을 갈았으며, 그녀의 오줌에서 해녀와 바다 생물이 생겨났다. 강지연은 이를 에코토피아적 세계관으로 분석하며 설문대할망이 유기체적 합일을 몸으로 보여주는 존재라고 짚는다. 인간이 자연을 이용해야 한다는 사고도, 보존해야 한다는 사고도 이 신화 안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녀의 몸 안에서 세 존재는 처음부터 하나였기 때문이다.
변형
설문대할망은 지역과 채록 시기에 따라 이름과 이야기가 다양하게 변주된다. 설만두할망·선문대할망·세명주할망·설명지할망 등 수십 가지 이름으로 전승되며, 이원조의 『탐라지(眈羅志)』와 장한철의 『표해록(漂海錄)』 등 조선시대 문헌에도 기록이 남아 있다. 표선 당케포구에는 세명주할망을 모신 당집이 있으며, 제주의 뱃사람들이 표류 중 한라산이 눈에 들어오자 설문대할망에게 살려달라고 간절히 애원하는 기록이 『표해록』에 남아 있어 수호신으로 믿어졌음을 보여준다. 표선리 당개 포구의 해신당에서는 해녀들을 보호하고 부를 가져다주는 당신(堂神)으로 모셔지기도 한다. 육지의 마고할미와 같은 계열의 존재로 여겨지기도 하며, 각편에 따라 창조신·수호신·희화화된 거인·비극적 어머니 등 다양한 면모가 전승된다. 이 다양성 자체가 설문대할망 서사의 생명력이다.
창작 활용 포인트
설문대할망을 현대로 가져올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그녀의 크기이지 않을까. 원작의 설문대할망은 한라산을 베개 삼고 발끝이 관탈섬에 닿는 거인이었다. 현대의 그녀는 그 크기를 안으로 접어 넣는다. 겉으로는 평범한 제주 할머니다. 보통의 옷을 걸치고, 괴팍하게 굴고, 욕도 거침없이 하고, 제주 말이 섞인 사투리로 관광객들한테 퉁명스럽게 대한다. 그녀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 간판은 낡았고, 방은 좁고, 조식은 제주 된장국 하나뿐이다. 그런데 그 몸 안에 한라산과 360개 오름과 제주 바다 전체가 들어 있다. 그녀가 화가 나면 바람이 불고, 발을 구르면 땅이 울린다. 손을 한 번 휘두르면 어지간한 것은 날아간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녀는 자기가 설문대할망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녀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제주에 오는 사람들을 보고 싶어서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제주에 오는 사람들에게 딸려오는 것들을 걸러내고 싶어서다. 육지에서 넘어오는 관광객들은 모르지만, 그 뒤에 따라오는 것들이 있다. 탐욕, 개발의 욕심, 땅을 오염시키는 것들, 바다를 망가뜨리는 것들. 설문대할망은 그것들을 안다. 제주의 흙이 본인의 살점이었던 시절부터, 바다가 오줌 줄기에서 시작된 시절까지 알아왔다. 그녀의 몸이 제주의 지형과 여전히 이어져 있기 때문에, 제주 땅이 아프면 그녀도 아프다. 오름 하나가 파헤쳐지면 그녀의 어딘가가 쑤신다.¹¹
그녀와 인어들의 관계가 이 이야기에서 독특하게 구현될 수 있지 않을까. 원작에서 설문대할망이 싸는 오줌 줄기로부터 온갖 해초와 문어, 전복, 소라, 물고기들이 나오고 그때부터 잠녀가 생겨났다. 현대의 그녀는 여전히 물질을 한다. 그리고 바다 깊은 곳에 자기가 만든 것들이 남아 있다는 걸 안다. 인어들은 그녀가 처음 바다를 만들 때부터 거기 있던 존재들이다. 그들은 그녀를 알아본다. 퉁명스럽고 욕 잘 하는 할머니가 사실 제주의 바다를 만든 자라는 것을. 설문대할망은 인어들을 통해 바다의 상태를 읽고, 인어들은 그녀를 통해 육지에서 오는 위협을 먼저 안다.
이 캐릭터의 클라이맥스는, 그녀가 제주 땅을 오염시키는 것들과 맞닥뜨리는 장면이다. 그녀는 섣불리 나서지 않는다. 원작의 설문대할망이 창조할 때 의도가 없었듯, 현대의 그녀도 함부로 힘을 쓰지 않는다. 그러나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있다. 오름이 무너지거나, 바다가 죽어가거나, 제주의 땅이 아예 다른 것으로 바뀌려 할 때, 그 순간 그녀는 접어 넣었던 크기를 꺼낸다. 평범한 할머니의 겉모습이 유지되는 채로 괴력이 발동하는 것이 이 캐릭터의 주요한 능력이다. 게스트하우스 마당에서 퉁명스럽게 된장국을 끓이다가, 손 한 번 휘둘러 보이지 않는 것을 날려버리는 할머니.
이 캐릭터가 희생의 서사를 거부하는 이유가 있다. 원작의 설문대할망은 아들들을 먹이다 죽는 어머니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현대의 설문대할망은 그 죽음 이후에도 제주에 남아 있다. 제주의 흙이 그녀의 살이었던 것처럼, 그녀는 제주 땅 안에 있다. 죽었지만 사라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애초에 죽을 수 없는 구조로 제주와 합일되어 있다. 창조가 목적이 아니라 존재 방식이었던 그녀에게는, 어쩌면 지키는 것도 목적이 아니라 존재 방식일 것이다. 괴팍하고 욕 잘 하고 좁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이 할머니는, 제주가 존재하는 한 거기 있을 것이다. 제주의 흙이 그녀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