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할머니
음력 2월에 내려오는 변덕스러운 바람의 신

영등할미는 죽은 자의 혼령에서 비롯된 존재가 아니라 자연현상, 구체적으로는 음력 2월의 계절풍이 인격화된 신령이다. 이 위키에서는 귀신을 인간의 죽음과 한(恨)에서 출발한 존재로, 요괴를 자연이나 인간 세계 바깥의 힘이 인격화된 존재로, 신령을 세계의 질서 자체를 창조하거나 관장하는 존재로 구분한다. 영등할미는 특정 인간의 억울함이나 미완성된 삶과 무관하며, 매년 주기적으로 인간 세계를 찾아왔다가 돌아가는 순환 구조를 가진다. 바람과 날씨라는 자연 질서를 직접 관장하며 인간의 삶에 풍요와 재앙을 함께 가져다주는 존재라는 점에서 신령으로 분류한다. 다만 민속 신앙에서 영등할미는 지역에 따라 그 성격과 위계가 다양하게 전승되며, 신령이라는 분류가 그 복합적인 면모를 온전히 담아내지는 못한다는 점을 밝혀 둔다.
개요
음력 2월에 하늘에서 내려오는 바람의 신. 어촌과 농촌 모두에서 모셔지는 신으로, 성격이 까다롭고 변덕스러운 노파의 형상을 띤다.[1] 영등할머니, 풍신할머니, 이월할머니 등 지역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만 어디서나 노파의 모습을 하고 있다. 다만 ‘할머니’라는 단어가 주는 보편적인 정서로 영등할미를 이해하면 안된다. 변덕스럽고 까다로운 성격으로 잘못 모시면 그 해 농사와 어업 모두 망칠 수 있는, 두렵고도 공들여 모셔야 하는 존재다.
유래와 형성
2월은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환절기로, 꽃샘추위가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불안정한 시기다. 바람이 거세졌다가 잦아드는 이 불규칙한 날씨를 사람들은 변덕스러운 노파의 방문으로 이해했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에서 오고 가는 것으로 여겨졌고, 그래서 영등할미는 자연스럽게 하늘의 신령으로 인식되었다. 불교의 천신 제석천(帝釋天)과 연결되기도 한다.[2]
문헌상 가장 이른 기록은 제주도와 경상도에서 나타난다.[3] 16~18세기 자료[4]에 이미 두 지역에서 영등할미 신앙이 매우 보편적으로 자리 잡고 있었음이 확인된다. 이후 신앙은 한반도 동남부를 중심으로 점차 퍼져나갔으며, 오늘날에는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등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전승되고 있다.
특징
영등할미는 음력 2월 초하루[6]에 하늘에서 내려와 보름이나 스무날에 다시 올라간다. 이러한 특징을 ‘내방신’이라고도 일컫는데, 영등할미가 대표격인 예시이다. 이본에 따라 영등할미가 올라가는 시기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공통적인 언급은 영등할미가 내려올 때 딸을 데리고 오면 바람이 잔잔해 날씨가 좋고, 며느리를 데리고 오면 바람이 거세고 파도가 높다고 한다.[7] 어부들에게 이 차이는 그해 조업의 성패를 가르는 문제였다.
신령이 부엌으로 내려온다는 점도 흥미롭다.[5] 영등맞이 의례는 유교적 제례와 달리 집안의 안주인이 주관하는 가내 의례였다. 부엌이 여성의 공간이었고, 바다 일은 남성의 몫이었기 때문에 이 의례만큼은 자연스럽게 여성이 중심이 되었다. 이는 한 가정의 안녕이 안주인의 정성에서 비롯된다는 믿음과 연결된다.
모시는 기간 동안에는 집 안팎을 정결하게 유지해야 하고 부정한 것을 멀리해야 한다. 외부인의 출입도 삼갔다. 영등할미가 올라가는 날에는 초우를 바다에 띄워 보내는 퇴송 의례를 치르며 마무리한다.[8]
지역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른데, 강원도에서는 풍신할머니, 충청도에서는 이월할머니, 경상도 일부에서는 제석할머니라고도 부른다.[10][9] 이름은 달라도 까다롭고 변덕스러운 성격, 잘 모셔야만 복을 내린다는 구조는 전국 어디서나 공통적이다.
창작 포인트
영등할미를 모시는 일에는 매뉴얼이 없다. 정결하게 하고, 부정한 것을 멀리하고, 음식을 차리고,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한지는 아무도 모른다.
영등할미가 딸을 데리고 오면 날씨가 좋고, 며느리를 데리고 오면 바람이 거세다. 그 선택은 영등할미 마음이다. 올해 풍년이 들지 흉년이 들지는 결국 그녀가 누구를 데려오느냐에 달려 있다. 인간이 아무리 정성을 다해도 그 결정에 개입할 방법은 없다.
이것이 영등할미 신앙의 가장 독특한 지점이다. 영등할미는 인간을 벌주려는 것이 아니다. 그냥 오고, 머물다가, 그냥 간다. 인간의 한 해 운명이 그 과정에서 결정될 뿐이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흉년이 들 수 있고, 정성을 다했는데도 풍랑이 온다. 영등할미는 인간에게 관심이 없다. 인간의 두려움도, 기도도, 간절함도 그녀의 경로를 바꾸지 못한다.
신의 악의보다 신의 무관심이 더 무서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악의는 풀 수 있지만 무관심은 풀 수가 없다. 영등할미는 그런 신이다.
각주
- 남항, 「영등할머니 호칭의 의미와 성격」, 『역사민속학』 33호, 한국역사민속학회, 2010, 295쪽 (국문요약)
- 남항, 앞의 논문, 297쪽 하단
- 남항, 앞의 논문, 300쪽 중단
- 『新增東國輿地勝覽』 全羅道 濟州牧 風俗條(1530); 신광수, 『石北集』 卷之七(1764); 『正祖實錄』 9년(1785) 4월 9일 유하원 상소문. 이상의 자료는 남항, 「영등할머니 호칭의 의미와 성격」, 『역사민속학』 33호, 한국역사민속학회, 2010, 298~300쪽에서 재인용.
- 남항, 앞의 논문, 305~306쪽 — 표2(지역별 신령의 호칭) 및 지도1(호칭 분포 현황) 참조.
- 매월의 첫 째 날, 음력 1일
- 이승철, 「동해 〈영등제〉의 존재양상 분석」, 『강원민속학』 21집, 강원도민속학회, 2007, 63쪽
- 이승철, 앞의 논문, 64쪽
- 남항, 앞의 논문, 305~306쪽 표2 참조
- 남항, 앞의 논문, 305~306쪽 표2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