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이
신이 되려다 실패한 존재 : 가뭄과 화마를 부르는 화룡

정의
강철이는 신이 되려다 실패한 존재다. 용으로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 혹은 하늘에 오르지 못한 화룡(火龍)이라는 두 갈래 정체성을 가지며, 그 실패의 흔적이 오히려 그를 한국 요괴관의 독자적 신앙 대상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서사
승천 직전의 실패
강철이의 기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전승은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박곡리에 남아 있다. 박곡리의 강철이 설화에 따르면, 대비사라는 절에 머물던 한 상좌가 인간의 모습을 한 채 살다가 마침내 용으로 승천하려는 순간, 절 밖에서 우연히 들려온 인간의 헛기침 소리에 그만 땅으로 떨어져 ‘꽝철이’가 되었다고 한다. 신이 되기 직전 인간의 사소한 동작 하나에 실패한 존재. 그 좌절은 곧 원한이 되어, 꽝철이는 이후 가뭄을 일으키고 재해를 부르는 짐승으로 변모한다. 사람들은 가뭄이 들면 꽝철이가 불을 일으킨 탓이라 여겨 그를 쫓기 위한 기우제를 올렸다.결핍에서 출발한 정체성
박곡리 전승이 흥미로운 까닭은 강철이의 정체성이 결핍에서 출발한다는 것에 있다. 한국 요괴 설화에서 대부분의 존재는 처음부터 요괴로 태어나거나 인간이었다가 변신한 결과인 데 비해, 강철이는 신이 되려다 실패한 존재다. 그 실패가 인간의 한순간 부주의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정은, 강철이가 단순한 자연재해의 의인화가 아니라 인간과 신성 사이의 미세한 균열에서 태어난 존재임을 보여준다.문헌 기록
문헌상 강철이의 흔적은 한참 더 거슬러 올라간다. 1614년 이수광은 『지봉유설(芝峰類說)』에서 “강철이가 거쳐간 곳은 가을이 봄과 같다”는 속담을 두고 시골 노인에게 그 뜻을 묻는 장면을 기록했다. 시골 노인은 강철이를 “몇 리 안의 초록과 농작물을 모두 말려버리는 괴물”이라 설명했고, 이수광은 이를 중국 『산해경(山海經)』의 ‘비(蜚)’(가뭄을 일으키는 소 형상의 요괴)와 같은 존재로 추측했다. 강철이가 17세기 초의 조선 지식인의 시야에까지 들어와 있었다는 사실은, 이 존재가 단순한 민간 괴담의 차원을 넘어 사회 전반의 두려움으로 기능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에서도 강철이가 다시 등장한다. 용 그림을 그린 후 태우려던 박지원을 배생이라는 인물이 만류하며 용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다. 배생은 용 중에서도 화룡(火龍)이 가장 독하다고 말한다. 화룡이 땅에 누우면 그 일대에 열기가 들끓어 폭염이 생기고, 화룡은 나무 두 그루에 몸을 걸칠 만큼 크며, 비와 천둥과 번개를 일으키고 입에서 불꽃도 뿜는다는 것이다. 박지원은 이 묘사를 듣고 그 존재가 응룡(應龍)도 한발(旱魃)도 아닌 강철이라고 단언한다. 18세기 후반의 지식인 박지원에 이르러 강철이는 더 이상 시골 노인의 입에서 전해지는 괴물이 아니라, 한반도 고유의 요괴로 분명히 분류되고 있었다.1957년까지 살아있던 신앙
강철이의 생명력은 근현대까지 이어진다. 1957년 8월 11일 동아일보 3면에 실린 「해괴한 풍설 실신 소동」이라는 기사는 그해 양산군 금산 부락의 수해 현장에서 ‘깡철’이라는 괴동물 두 마리가 나타나 수면을 5미터씩 오르내리게 했다는 풍문을 전한다.[1] 이재민들이 가산과 가족을 잃은 와중에도 깡철 구경에 법석을 떨었다는 기록은, 강철이가 단순한 옛 설화가 아니라 20세기 중반까지도 공동체의 위기 앞에 호명되는 살아 있는 신앙이었음을 증언한다. 신이 되지 못한 존재가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의 입을 통해 끈질기게 호명되어 온 것이다.
특징
강철이의 형상은 한 가지로 통일되어 있지 않다. 여러 증언과 문헌을 종합하면, 강철이는 대체로 3미터에서 6미터에 이르는 짐승으로, 머리는 용을 닮았으되 몸은 소나 말의 형상에 가깝다고 전해진다. 다리가 달린 동물로 묘사된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이무기나 뱀의 계열과는 구별되며, 용의 머리에 가축의 몸을 결합한 이 기이한 조합은 강철이가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존재임을 외형 자체로 드러낸다. 신이 될 머리를 가졌지만 그 머리를 떠받치는 몸은 끝내 짐승의 것에 머물렀던 것이다.
강철이가 가진 능력은 거의 모두 여름철의 극단적 기상 현상과 결부된다. 끓는 연못에서 솟아 나오고, 입으로 불꽃을 뿜으며, 비와 우박과 천둥과 번개를 동시에 몰고 다닌다. 땅에 독을 퍼뜨리고는 안개처럼 사라진다고도 한다. 가뭄, 폭염, 폭풍, 산불 등등.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여름의 재앙들이 강철이라는 한 마리의 짐승으로 압축되어 있는 형태다.
이 모든 능력이 신령한 존재의 것이 아니라 재앙을 부르는 악한 존재의 것으로 분류된다는 점도 살펴볼 만하다. 동아시아의 다른 용 계열 존재들이 비를 내리고 풍요를 가져오는 신격으로 모셔지는 데 비해, 강철이는 같은 비를 내리더라도, 그것이 우박과 폭풍으로 변질된 형태로만 등장한다. 신이 되지 못한 존재의 능력은 신의 능력과 외형은 닮았으되, 그 방향이 뒤집혀 있다. 풍요를 내려야 할 자리에 재해를 내리고, 생명을 키워야 할 자리에 초목을 말려 죽이는 것이다. 강철이의 능력은 결국 “용이 되었다면 가졌을 권능”의 어두운 그림자이자, 실패한 신성이 끝내 갖게 된 일그러진 권능이다.
변형
강철이는 단일한 이름이나 단일한 모습으로 전해지지 않았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이름이 갈리고, 그 의미와 결까지 함께 변주되었다.
먼저 명칭의 변형이다. 강철이는 문헌과 구전 자료에 따라 ‘강철’, ‘꽝철이’, ‘깡철’, ‘강철이’ 등으로 다양하게 표기된다. 같은 존재가 지역마다 다른 발음으로 불려왔다는 사실은, 강철이가 어느 한 지역의 고유한 신앙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한반도 동부 전역에 걸쳐 동시다발적으로 형성되어 왔음을 밝힌다.
다음은 동아시아 요괴 계보 안에서의 위치다. 1614년 이수광이 『지봉유설』에서 강철이를 중국 『산해경(山海經)』의 ‘비(蜚)’(가뭄을 일으키는 소 형상의 요괴)와 같은 존재로 추측한 이후, 강철이는 한반도 고유의 요괴이면서, 동아시아 가뭄 요괴 계보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했다.[2] 신이 되려다 실패한 한반도의 존재가 중국의 가뭄 요괴와 한 줄로 묶이게 된 것이다. 이 비교는 강철이의 정체성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한다. 동아시아 전체에서 신이 되지 못한 존재들이 공통적으로 가뭄과 결부되어 인식되어 왔다는 사실은, 강철이가 지역적 특이 사례가 아니라 신성 실패라는 보편적 두려움의 한반도판 응답임을 나타낸다.
지역에 따른 의미의 분화의 변형도 있다. 영남 지역의 강철이가 박곡리 전승처럼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 즉 승천에 실패한 존재로 그려지는 데 비해, 강원도 지역의 강철이는 이무기나 승천과 무관하게 ‘불’ 자체와 결부된 요괴로 등장한다. 영서 지역은 예부터 화전 농업이 잦았고 건조한 기후로 가뭄과 산불이 빈발한 지역이었기에, 화전을 위해 놓은 불이 산불로 번지는 공동 체험이 ‘강철이’라는 이름을 통해 분화하고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같은 이름의 요괴가 지역의 자연환경과 생업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은, 강철이라는 존재가 고정된 신화 안에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호명하는 공동체의 두려움에 따라 끊임없이 다시 빚어져 왔음을 보여준다. 신이 되지 못한 존재의 정체성은 그를 호명하는 자들의 결핍과 만나며 매번 새로운 형태로 응답해온 것이다.
창작 활용 포인트
철이는 신이 되려다 실패한 존재다. 그 실패는 인간의 한순간 부주의에서 비롯되었고 이후 강철이는 수백 년 동안 재앙을 부르는 악한 짐승으로만 호명되어 왔다. 그러나 강철이의 본질은 악함이 아니라 결핍에 있다. 가장 가까이까지 도달했던 존재가 한순간 모든 것을 잃었다는 좌절, 그리고 그 좌절이 풀리지 않은 채 굳어버린 원한이 강철이의 정체성을 이룬다.
인간적 공명
정점에 가장 가까이 갔다 사소한 이유로 추락한 자, '추락한 자에게도 새 자리가 있는가'라는 물음.
이 본질을 현대로 옮기면 한 사람의 이야기가 된다. 한때 모든 것을 가졌던 사람, 정점에 가장 가까이 도달했던 사람이 자기 잘못이라 부르기에는 너무 사소한 이유로, 혹은 자기 통제 밖의 한순간으로, 모든 것을 잃은 사람. 예시로는 모든 것을 잃은 대기업 CEO일 수도 있고, 정점을 향해 달려가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떨어진 누군가일 수도 있다. 강철이가 가뭄과 화재로 사람들을 괴롭혔던 것처럼, 그도 한동안은 자기 자신을 망치고 주변을 망쳤을 것이다.
이야기는 그가 누군가를 만나는 자리에서 시작될 수 있다.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 그가 한때 무엇이었는지에 관심이 없는 사람. 그저 지금 이 시간을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단단한 사람. 강철이의 원한은 자기를 알아봐 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것이었지만, 어쩌면 그 원한이 풀리는 자리는 자기를 굳이 알아보려 하지 않는 사람의 옆자리일지도 모른다. 신이 되지 못한 존재가 끝내 만나야 했던 것은 또 다른 신이 아니라, 신이 되려 한 적조차 없이 그저 오늘을 살아가는 한 인간이었다는 이야기.
강철이를 이렇게 다시 쓴다면, 그것은 단순한 요괴의 현대화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한 페이지를 함께 다시 읽는 일이 될 수 있다. 추락한 자에게도 새로운 자리가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자리는 정점이 아니라 누군가의 옆이라는 것. 강철이는 그 가능성을 수백 년 전부터 품고 있었던 존재인지도 모른다.
각주
- “해괴한 풍설 실신 소동,” 『동아일보』, 1957년 8월 11일, 3면, 이예지, “강원도·불·강철이,” 147~194에서 재인용.
- 이수광, 『지봉유설』, 이예지, “강원도·불·강철이,” 147~194에서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