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사리
쇠를 먹고 끝없이 자라며 죽일 수 없는 요괴

요괴는 자연이나 인간 세계 바깥의 힘이 인격화된 존재로서 일상의 경계를 침범하고 뒤흔드는 이질적 타자다. 특정 개인의 감정도, 우주적 원리의 구현도 아닌, 인간이 완전히 이해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힘이 형체를 얻은 존재라고도 할 수있다.
불가사리는 이 기준에 부합한다. 나라가 흔들리는 혼란한 시기에 우연히 생겨나 쇠를 먹고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며, 어떤 방법으로도 죽일 수 없다는 이유로 그 이름을 얻은 존재다. [1]그 행위는 누군가의 원한이나 자연의 분노가 아니라, 아무도 통제하지 못하는 것들이 한데 뭉쳐 물질화된 사건에 가깝다.
개요
한국 설화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요괴로, 고려 말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에 특히 자주 나타난다.[2]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이른 문헌 기록은 조선 후기 학자 조재삼이 쓴 『송남잡지』로, 여기에 "不可殺(불가살)"이라는 항목으로 그 이름과 줄거리가 처음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름 자체가 "죽일 수 없다"는 뜻인 만큼, 존재 그 자체가 이야기의 전부인 요괴다.
유래와 형성
불가사리 이야기의 기본 뼈대는 불교 경전인 『구잡비유경』에 실린 화모(禍母) 설화와 거의 일치한다. 화모 이야기에는 바늘을 먹는 괴물이 등장하는데, 무기로 공격해도 전혀 다치지 않고, 불로 없애려 하자 오히려 불덩이째로 마을에 뛰어들어 더 큰 피해를 낸다. 이 흐름은 불가사리 설화와 사실상 같다.
『송남잡지』가 이 이야기를 기록한 데에는 맥락이 있다. 당시 사람들 사이에 "可殺不可殺(가살불가살)", 즉 "죽일 수 있는 것과 죽일 수 없는 것"이라는 표현이 관용어처럼 쓰이고 있었고, 조재삼은 그 말의 유래를 설명하기 위해 이 괴물 이야기를 끌어온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불가사리 설화는 고려 말이라는 시대에서 자연스럽게 싹튼 이야기라기보다, 19세기 무렵 "아무리 잘못해도 건드릴 수 없는 자"를 가리키는 말이 먼저 있었고, 거기에 이미 퍼져 있던 불교 계통의 괴물 이야기가 붙어 지금의 형태로 굳어진 것으로 보는 편이 정확하다.
특징
식철(食鐵)과 무한 성장
불가사리의 가장 뚜렷한 특성은 쇠를 먹는다는 것이다. 바늘 한 개에서 시작해 닥치는 대로 쇠붙이를 먹어 치우며 몸집을 불리고, 결국 산만큼 거대해진다. 단순히 무섭고 크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농기구와 무기가 사라진다는 것은 곧 농사를 짓지 못하고 나라를 지키지 못한다는 뜻이므로, 불가사리의 식철은 공동체를 뿌리째 흔드는 위협이다.
비슷하게 쇠를 먹는 존재로 맥(貘)이라는 상상 속 짐승이 있다. 경복궁 자경전 굴뚝의 부조나 군맥도(群貘圖) 같은 그림에 등장하는 그 짐승이다.[3] 그런데 맥이 쇠를 먹는 것은 나쁜 기운을 몰아내는 좋은 능력으로 그려지는 반면, 불가사리가 쇠를 먹는 것은 재앙의 시작이다. 두 존재가 종종 혼동되지만, 이 성격의 차이가 둘을 가르는 핵심 기준이다.
불가살(不可殺)의 속성
어떤 방법으로도 죽일 수 없다는 것이 이 존재의 본질이다. 설화를 보면 부적, 시주, 불 지르기 같은 신앙적 방법부터 현상금을 내걸어 제거자를 모집하는 것까지 온갖 수단이 동원되지만 대부분 실패로 끝난다. 특히 불로 처치하려다 오히려 불덩이가 된 불가사리가 민가로 날아들어 집을 태우는 장면은 여러 설화에서 반복되는 패턴이다. 죽이려 할수록 더 큰 피해가 돌아온다는 이 구조가, 이름의 어원이자 이야기 전체를 이끄는 힘이다.
형상
초기 기록에는 외모 묘사가 거의 없다. 불가사리의 원형이 된 화모는 그저 "돼지를 닮은 모습"으로만 적혀 있고, 『송남잡지』에는 생김새에 대한 서술 자체가 없다. 구체적인 형상이 등장하는 것은 20세기 들어서다. 1921년에 나온 소설 『송도말년 불가살이전』에서 불가사리는 코끼리의 몸, 소의 발, 곰의 목, 사자의 턱, 범의 얼굴, 무소의 입, 말의 머리, 기린의 꼬리를 가진 여러 동물의 혼종으로 묘사된다. 이 묘사는 맥(貘)의 형상에서 영향을 받은 흔적이 있지만, 구체적인 부위 배치에서 차이가 있어 둘을 완전히 같은 존재로 보기는 어렵다.
창작 포인트
불가사리를 그저 난세의 파괴자로만 읽으면 이야기가 단순해진다. 설화 속 불가사리는 억눌린 누군가가 심심풀이로 빚은 작은 형상에서 시작한다. 처음부터 악으로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다. 괴물이 된 것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 체제의 문제이기도 하다.
매체에 따라 불가사리의 성격은 크게 달라지는데, 그 변화 자체가 흥미로운 창작 지점이 된다. 1920년대 소설에서는 이성계의 조선 건국을 돕는 문화영웅으로, 1960년대 영화에서는 억울하게 죽은 주인공이 환생한 원한의 화신으로, 1985년 북한 영화에서는 농민 혁명을 이끌다 혁명 성공 후 제 역할을 다해 사라지는 존재로 그려진다. 같은 괴수가 시대마다 전혀 다른 이야기를 품었다는 점에서, 불가사리는 단일한 캐릭터라기보다 시대의 욕망과 공포를 담는 그릇에 가깝다.
형상을 다룰 때도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군맥도 계통의 그림, 즉 코끼리 코를 가진 혼종 짐승의 이미지가 불가사리의 전통적인 모습인 것처럼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는 원래 맥을 그린 그림에 더 가깝다. 창작에서 반드시 이 이미지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죄가 있어도 건드릴 수 없는 것들"이라는 이름의 본래 의미를 이야기의 중심에 두는 방식이 불가사리라는 소재를 더 넓고 깊게 활용하는 길일 것이다.
각주
- 조재삼, 『송남잡지(松南雜識)』, 강민구 역 (서울: 소명출판, 2012), 방언류 「불가살」 항목.
- 곽재식, 「불가살이 콘텐츠 속 괴물의 형상과 맥 설화와의 관계 연구」, 『인문콘텐츠』 제69호 (2023): 10.
- 엄소연, 「괴수 '불가사리'의 이미지 변주와 미디어 횡단성」, 『기호학 연구』 제60집 (2019): 63–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