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해진의 세 귀물
"배가 고파요" 한마디로 관장을 죽이는 변방의 세 요괴

*형태가 정해지지 않아 필자의 의견에 따른 이미지로 대체. 배고프다는 사실을 미루어보아 양반 옷을 입고 있지는 않았을 것. 세 사람의 형형한 눈빛과 세 귀물의 이미지가 비슷하게 느껴져 이미지 선택.
요괴는 자연이나 인간 세계의 바깥에서 비롯된 힘이 낯선 형태로 나타난 존재다. 억울함을 풀어달라 호소하지도, 도덕적 심판을 내리지도 않는다. 그저 그 자리에 있고, 그 자리에서 재앙을 일으킨다.
별해진의 세 귀물은 이 기준에 들어맞는다. 변방의 관아에 출몰해 부임하는 관장마다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세 존재. 이들은 원한도, 사연도 내세우지 않는다. 다만 배가 고프다고 말할 뿐이다. 그 단순한 한마디가 오히려 이 존재들을 더 낯설게 만든다. 조선의 도덕 언어로는 끝내 설명되지 않는 힘이 존재들의 핵심이다.
개요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 사이에 기록된 야담집 『천예록(天倪錄)』에 실린 「별해진에서 주먹으로 세 귀신을 쫓아내다」의 주인공들. 변방의 군사 요충지인 별해진에 출몰해 부임하는 관장을 잇달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신임 첨사 이만지가 이들과 맞닥뜨려 무엇을 원하느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은 단 한마디였다. "배가 고파요."[1]
셋이 함께 다니며 움직인다는 것 외에 이들의 생김새나 정체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알려진 것은 이들이 일으킨 결과뿐이다. 부임하는 관장마다 죽어나갔고, 아무도 그 원인을 알지 못했다.
유래와 형성
조선 시대 변방의 군사 지역은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통제가 느슨하고, 가난한 백성들이 밀집해 있었으며, 관(官)의 수탈이 심한 곳이기도 했다. 별해진의 세 귀물이 출몰하는 공간적 배경이 바로 이런 변방이라는 점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17세기 중후반 조선은 대기근과 전염병이 겹쳐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갔던 시기다. 굶주린 백성들의 죽음이 일상이었고, 그 죽음에 관(官)이 얼마나 무책임했는지는 당시 기록 곳곳에서 확인된다. 세 귀물이 내뱉은 "배가 고파요"라는 말은 그 시대의 맥락 위에서 읽힐 때 비로소 무게를 얻는다.
이 존재들이 정확히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는 이야기 속에서 설명되지 않는다. 그 불명확함 자체가 이 존재들의 성격을 규정한다. 설명할 수 없기에 더 두려운 요괴이기도 하다.
특징
목적 없는 죽음
별해진의 세 귀물이 관장을 죽이는 데는 뚜렷한 이유가 없다. 원귀처럼 억울한 사연을 풀려는 것도 아니고, 조상령처럼 후손을 단속하러 온 것도 아니다. 그저 관장이 부임하면 죽는다. 왜 하필 관장인지, 왜 이 장소인지에 대해 답하지 않는다.
이 무목적성이 이 존재들을 특별히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다. 원인을 알면 피할 수 있으나, 이유를 알 수 없는 재앙 앞에서 인간은 속수무책이다. 이들이 일으키는 죽음은 어떤 도덕적 잣대로도 설명되지 않는, 그냥 일어나는 재앙에 가깝다.
"배가 고파요" 이 이야기에서 가장 강렬한 장면은 세 귀물이 입을 여는 순간이다. 신임 첨사 이만지가 이들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묻자, 대답은 반복된다. "배가 고파요.“
이 한마디는 여러 방향으로 읽힌다. 가장 표면적으로는 귀물이 음식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변방의 굶주린 백성, 수탈에 지친 백성이라는 맥락을 얹으면, 이 말은 단순한 식욕의 표현이 아니게 된다. 국가에 대한 궁핍한 민중들의 분노와 저항, 그 사회적 적대가 요괴의 입을 빌려 표출된 것으로 읽힌다. 직접적으로 말할 수 없었던 것들이, 요괴라는 형식을 통해 간신히 언어가 된 셈이다.
셋이라는 숫자
이 존재들이 홀로가 아니라 셋이 함께 다닌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하나의 귀물이 아니라 여럿이 무리를 이룬다는 설정은, 이 존재들이 특정 개인의 원한이 아니라 집단적인 무언가를 담고 있음을 암시한다. 굶주림과 결핍은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 시대를 살았던 수많은 이들이 함께 겪은 것이었다.
창작 포인트
별해진의 세 귀물에서 가장 강력한 서사적 자원은 "배가 고파요"라는 말이다. 공포스러운 존재가 내뱉는 말치고는 너무 소박하고, 너무 인간적이다. 그 낙차에서 이 존재들의 매력이 나온다.
무서운 요괴가 꼭 거대하고 기괴한 말을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가장 단순하고 가장 낮은 말이 때로는 어떤 저주보다 더 큰 무게를 가진다. 이 존재들을 서사에 활용한다면, 그 단순함을 지켜야 한다. 사연을 덧붙이고 설명을 더하는 순간, 이들은 평범한 원귀가 되어버린다.
셋이라는 설정 역시 활용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각자 다른 얼굴을 가지되 하나의 목소리로 말하는 존재, 혹은 서로 다른 죽음을 경험한 셋이 어떤 이유로 묶이게 되었는지를 탐구하는 방식도 흥미로운 접근이 될 수 있다.
각주
- 임방(任昉), 『천예록(天倪錄)』, 정환국 역 (서울: 성균관대출판부, 2005), 「별해진에서 주먹으로 세 귀신을 쫓아내다」; 강상순, 「조선시대 필기·야담류에 나타난 귀신의 세 유형과 그 역사적 변모」, 『우리어문연구』 38 (2010): 164에서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