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두리
곡식을 두드리는 농기구에서 비롯된 도깨비의 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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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두두리는 한국 도깨비의 원형이 된 정령으로, 곡식을 두드리는 나무 농기구에서 비롯되었다. '두드리다'에서 파생된 이름이며, 가장 일상적인 동작(두드림)이 가장 신성한 존재를 빚어낸 사례다.
서사
두두리, 두두리. 자꾸만 되뇌이고 싶은 두두리는 사실, 곡식을 두드릴 때 쓰는 나무 농기구이다. “두두리”는 『고려사』 열전 이의민 조에 처음 나타난 단어이다. 무신정권의 권력자 이의민은 자기 집에 두두리를 모셨고, 그 정령을 위해 거듭 제사를 지내며 권세의 보호를 빌었다고 한다.[1] 농기구에서 출발한 존재가 한 시대 최고 권력자의 사적 신앙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은, 두두리가 한낱 도구의 정령을 넘어 인간의 운명을 좌우할 만한 위계로 격상되었음을 보여준다.
“두두리”의 더 먼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신라 석탈해 신화에 가닿는다. 알에서 태어나 궤짝에 담겨 바다를 건너온 석탈해는, 자기 거처를 정하기 위해 호공의 집에 몰래 숯과 숫돌을 묻어두고는 “이 집은 본래 우리 조상이 대장장이로 살던 터”라 주장해 그 집을 차지했다.[2] 석탈해가 자기 정체성의 증거로 내세운 것이 칼이나 활이 아니라 대장장이의 연장이었다는 점, 그리고 그가 끝내 신라의 왕이 되었다는 점을 연결해 본다면, 한반도 고대 사회에서 대장장이가 단순한 장인이 아니라 신성한 권능을 지닌 존재였다는 정황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3]
농기구, 도구의 정령, 나무의 정령, 불과 쇠를 다루는 신으로 이어지는 의미의 이동은, 한국 도깨비 신앙이 단일한 원형에서 가지를 친 것이 아닌 여러 층위의 신앙이 ‘두드림’이라는 동작을 매개로 누적되어 왔음을 시사한다.
특징
고려시대에 곡식을 찧는 데 쓰는 절구공이가 “두두리”였고, 이는 “두두리다”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것이다. 이 단어는 현재 우리나라의 용광로(울산의 달천광산[4])가 있는 지역에서 아직까지 살아있는 말이기도 하다.
왜 하필 불과 관련된 곳일까. 일단 도깨비는 “불의 존재”다. 이 존재는 도깨비불을 다루며, 인간에게 장난을 걸거나 괴롭히면서 즐거워한다. 무엇보다 신출귀몰하며 인간을 돕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러한 도깨비의 원형인 두두리가 대장장이의 신이었다는 이야기는 꽤 근거 있는 가설일 것이다.[5] 담금질을 통해 새로운 것을 탄생시키는 대장장이의 능력은, 형체를 자유로이 바꾸는 도깨비의 능력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전라도 일대에는 지금까지도 도깨비가 불을 내지 않도록 달래는 굿[6]이 남아 있다고 한다. 두두리가 농기구에서 출발해 불의 신으로 옮겨간 긴 여정의 마지막 흔적이 현재까지 생생히 살아 있는 셈이다.
변형
두두리는 후대로 갈수록 하나의 이름에 머무르지 않고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다. ‘두드림’이라는 본래의 동작이 다른 존재로 변주되는 것이다.
도깨비 — 두두리가 불을 다루는 대장장이의 신에서 출발했다는 가설을 받아들이면, 후대 도깨비가 ‘불의 존재’로 자리 잡은 이유가 자연스럽게 풀린다. 도깨비는 도깨비불을 흔들며 돌아다니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인가에 불을 지르는 방식으로 복수하기도 한다. 두드려 불을 일으키던 정령의 권능이, 후대로 오며 변덕스러운 화신(火神)의 성격으로 굳어진 셈이다.
제주의 영감 — 「영감본풀이」에서 도깨비는 ‘영감’이라 높여 불리는 야장신(冶匠神), 곧 대장장이의 신으로 모셔진다. 두두리의 대장장이 정체성이 육지에서는 흐려지고 변형된 데 비해, 제주에서는 본래의 직능이 그대로 신앙의 형태로 보존된 것이다. 제주 도깨비의 또 한 가지 특이점은 성(性)을 바꾸는 존재라는 점이다. 한국 신화 전체를 통틀어 성을 자유로이 바꾸는 신격은 제주 도깨비가 거의 유일하다. 육지의 도깨비가 한결같이 남성으로 그려지는 것과는 뚜렷이 구별된다. 형체를 자유로이 빚는 대장장이의 능력이 신체의 성을 빚는 능력으로까지 확장된 결과로도 읽을 수 있다.
창작 활용 포인트
“두두리”는 두드림이라는 동작과 그로부터 비롯된 소리가 중요한 존재라고 볼 수 있다. 매일 마당에서 곡식을 두드리던 사람들의 반복된 동작이 정령을 빚어냈고, 그 정령이 권력자의 신앙 대상이 되었다가, 끝내는 불과 쇠를 다루는 신으로 격상되었다. 가장 일상적인 동작이 가장 신성한 존재를 만들어낸 것이다.
창작자로서 이 이야기를 현대로 끌어오려 할 때, 가장 먼저 던져볼 만한 질문이 있다. 지금 이 순간, 우리 곁에서 두드려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혹은 반대로, 무엇이 두드리고 있는가. 두드리는 주체가 사람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두드려지는 대상이 도구여야 할 이유도 없다.
반복의 밀도와 시간이 정령을 만든다면, 지금 이 도시 안에는 얼마나 많은 두두리가 잠들어 있거나 막 깨어나고 있을까. 그 정령이 어떤 성격을 지니는가는 무엇이 얼마나 오래, 어떻게 두드려졌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같은 두드림이라도 혼자의 손때가 쌓인 것과 수많은 사람의 지문이 겹친 것은 서로 다른 두두리를 품고 있을지 모른다. 두드리는 자의 감정이 달라도, 두드려지는 자리가 달라도, 각각 다른 결의 존재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이 발상을 어느 각도로 밀고 나갈지는 창작자의 몫이다. 두두리를 어디서 발견할 것인가, 그 존재가 어떤 목소리를 가질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인간에게 말을 건다면 어떤 이야기가 시작될 것인가. 이 질문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열어두는 것이 두두리라는 존재를 현대로 다시 빚는 첫 번째 손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각주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도깨비,” 한국학중앙연구원, 검색일 2026년 5월 11일,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5501.
- 일연, 『삼국유사』 권1, 「기이」 제4 탈해왕조, 한국고전종합DB, 한국고전번역원, https://db.itkc.or.kr.
- 강은해, “두두리 재고: 도깨비의 명칭 분화와 관련하여,” 『한국학논집』 16 (1989): 57~74.
- 울산제일일보(http://www.ujeil.com)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도깨비.”
- 진도 “도깨비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