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광귀
정월 밤 신발을 훔쳐 한 해 운수를 가져가는 귀신

야광귀는 정월을 전후한 밤에 인가로 내려와 신발을 가져가는 귀신이다. 특정 시기에 반복적으로 출몰하는 귀신이다. 다만 개인의 한(恨)과 무관하고, 세시풍속 전반에 걸쳐 기능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원혼과는 결이 다르다.[1]
개요
정월 초하루 전후 밤에 나타나 신발을 훔쳐 가는 귀신. '신발귀신'이라고도 불린다. 이 귀신에게 신발을 빼앗긴 사람은 그해 내내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고 여겼다. 사람들은 이를 막기 위해 잠자리에 들기 전 신발을 방 안으로 들여놓고, 집 앞에는 체를 내걸었다. 야광귀가 체의 구멍을 하나씩 세다 보면 동이 트고, 날이 밝으면 돌아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두렵지만 체 하나로 막을 수 있는, 어딘가 단순한 귀신이다.
유래와 형성
야광귀라는 이름의 정확한 기원은 불분명하다. 조선 후기 유득공(柳得恭)은 『경도잡지(京都雜志)』에서 이 이름이 '약왕(藥王)'에서 왔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약왕보살은 『법화경(法華經)』에 등장하는 존재로, 중생의 병을 고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유득공은 약왕의 형상이 워낙 기이하고 무서워 아이들이 두려워했고, 이를 이용해 아이들을 일찍 재우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가 야광귀 신앙으로 굳어졌을 것이라고 보았다.
야광귀 신앙이 문헌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 후기 각종 세시기(歲時記)를 통해서다. 홍석모(洪錫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권용정(權用正)의 『한양세시기(漢陽歲時記)』, 유만공(柳晩恭)의 『세시풍요(歲時風謠)』 등이 야광귀와 관련된 풍속을 각각 기록하고 있다. 기록마다 귀신의 명칭과 세부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신발을 빼앗기면 불길하다는 것과 체를 걸어 막는다는 핵심 구조는 공통적이다.
특징
야광귀가 어떻게 생겼는지 묘사한 자료는 없다. 귀신의 실체보다 그 피해와 대처 방식이 훨씬 구체적으로 전해진다는 점이 야광귀 신앙의 특징이다.
신발을 빼앗긴다는 설정에는 신발이 곧 그 사람을 대신한다는 오랜 관념이 담겨 있다. 중국 갈홍(葛洪)의 『신선전(神仙傳)』에서 신선이 죽을 때 신발만 남기고 사라진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야광귀가 신발을 골라 신어본다는 것은 단순한 도둑질이 아니라, 누군가의 한 해 운명을 가져가는 행위로 이해된다.
체를 걸어두는 방어 방식도 흥미롭다. 구멍이 촘촘한 체는 눈이 많은 사물로 여겨졌으며, 민간에서는 눈이 많은 존재가 귀신을 제압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장례 행렬 앞에 세우는 방상시(方相氏)[2] 가면에 눈이 네 개 달린 것도 같은 원리다. 체 앞에서 구멍을 세다 멈추지 못하는 야광귀는, 눈의 힘에 압도되어 본래 목적을 잊는 귀신이기도 하다.
전승 지역은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걸쳐 있으며, 서울·경기와 충북 지역에서 특히 강하게 나타난다. [3]강원도와 경북에서는 정월 16일 '귀신날'과 연결되어 전승되는 경우가 많다.[4] 출현 시기도 지역마다 달라 정월 초하루부터 열나흗날, 보름, 열엿샛날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부르는 이름도 지역마다 제각각이다. 달귀귀신, 마고할미, 야귀할멈, 톳재비, 고마이 등 지역색이 짙은 이름들로 불린다.
창작 포인트
야광귀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귀신의 위협이 간접적이라는 데 있다. 귀신이 사람을 직접 건드리지 않는다. 신발을 골라 신어볼 뿐이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한 해 운명이 달라진다. 피해의 경로가 보이지 않고, 언제 어떻게 불길한 일이 닥칠지 알 수 없다는 점이 오히려 더 오래 불안을 남긴다.
동시에 야광귀는 체 하나로 막을 수 있는 귀신이다. 숫자 세기를 멈추지 못한다는 약점은 단순하지만, 뒤집어 보면 기묘하다. 숫자를 다 세면 결국 오는 것인지, 셀 수 없어서 영원히 못 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강박적으로 반복하는 행동, 새벽닭이 울기 전까지만 유효한 시간의 제약,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묘한 허술함은 공포와 우스꽝스러움 사이 어딘가에 야광귀를 위치시킨다.
지역마다 이름이 다르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같은 귀신이 어느 곳에서는 할머니 형상으로, 어느 곳에서는 정체불명의 존재로 불린다. 야광귀는 특정한 하나의 얼굴이 없다. 지역과 시대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 형태가 고정되지 않은 귀신이다.
각주
-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참고
- 전통 의례에서 악귀를 쫓는 역할을 하는 가면
- 이영식, 「횡성지역 세시풍속 연구」, 『강원민속학』 21호, 2007, 328쪽
- 이영식, 앞의 논문, 32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