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족부인
낳고 내버리고 회수하는, 가장 완전한 어머니 신격

정의
녹족부인은 자기가 낳은 것을 자기 손으로 내버리고, 그것이 적이 되어 돌아왔을 때 자기 몸의 증거로 굴복시키는 여신이다. 사슴 발을 가진 반인반수(半人半獸)로 평양·안주 지역에 전승되며, 생산과 추방과 회수가 한 몸에서 완결된다는 점에서 한국 신화에서 가장 완전한 형태의 어머니 신격이다.
서사
녹족부인 이야기는 고구려 시대 또는 그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연원을 지닌 서사로, 북한 평양 및 안주 지역을 중심으로 구전되어 왔다. 문자로 기록된 최초의 자료는 1727년 조선 영조 때 세워진 광법사사적비명이며, 18세기 중엽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도 안주 지역의 고적 유래담으로 실려 있다. 두 기록은 기본 구조를 공유하면서도 결말의 무게가 다르다.
다산과 추방
녹족부인의 이야기는 탄생에서 시작된다. 그녀는 사슴의 발을 가진 채 태어난 반인반수의 존재이며, 고귀한 왕족의 지위에 있으면서도 한 번에 아홉 또는 열두 명의 아들을 낳는 다산성을 지닌다. 그러나 그 탄생은 곧 추방으로 이어진다. 한꺼번에 여러 아들을 낳은 것이 상서롭지 못하다 여겨지자, 녹족부인은 아들들을 상자에 담아 바다에 떠내려 보낸다. 자기가 낳은 생명을 자기 손으로 바다에 내버리는 이 행위는 잔인해 보이지만, 강상대는 이를 융이 말하는 ‘공포의 어머니’의 행위로 분석한다. 선한 어머니가 보호하고 양육하는 기능을 한다면, 공포의 어머니는 자식을 자궁의 낙원으로부터 추방시켜 시련 속에서 영웅으로 거듭나게 하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녹족부인이 아들들을 내버린 것은 그들을 버린 것이 아니라, 그들을 더 큰 존재로 빚기 위한 추방이었다.적이 되어 돌아온 아들
바다를 건너 중국에 닿은 아들들은 그곳에서 자라 장수가 되었고, 훗날 각각 삼천 명의 병사를 이끌고 본국을 침범하기 위해 돌아온다. 이 자리에서 이야기의 무게중심이 이동한다. 녹족부인은 침략 소식을 듣자마자 직접 들판으로 나아간다. 그녀는 방패 같은 누각을 엮고 그 위에 올라앉아 아들들을 아래로 불러들인다. 그리고 자기 손으로 두 가지 증거를 내민다. 열두 아들에게 차례로 젖을 맛보게 하니 모두 입으로 넘기지 못하고, 열두 개의 버선을 주니 모두 발에 꼭 들어맞는다. 자기 몸에서 나온 젖과 자기 발의 치수로 만든 버선이 아들들의 정체를 확인하는 증거가 된다. 아들들은 차례로 무릎을 꿇으며 말한다. “우리를 낳으신 분도, 우리에게 젖을 주신 분도, 우리에게 버선을 신기신 분도 모두 어머니이니 부모의 나라를 침범할 수가 없습니다.”자기 몸이 무기 — 칼·군대가 아니라 젖과 버선으로 굴복시킨다. 열두 아들에게 젖을 맛보게 하니 넘기지 못하고, 버선을 주니 발에 꼭 맞는다. "낳고 젖 주고 버선 신긴 분이 어머니이니 부모의 나라를 침범할 수 없다." 창조의 신체가 곧 회수의 무기가 된다. 이 장면이 녹족부인 서사의 정점이다. 그녀가 아들들을 회수하는 방식은 힘이나 무기가 아니라 자기 몸 그 자체다. 아들을 낳아낸 가슴과 발이 전쟁의 도구가 되고, 적군을 굴복시키는 무기가 된다. 창조의 신체가 곧 회수의 무기가 되는 이 구조에서, 녹족부인의 몸은 생산과 추방과 회수라는 세 가지 기능을 모두 담은 가장 완전한 신화적 도구가 된다. 강상대는 이 점을 두고 녹족부인이 “그 자신이 신이한 성격과 행위를 통해 신성을 구현하는 동시에 아들을 자궁의 낙원으로부터 추방시켜 시련에 빠뜨림으로써 영웅으로 거듭나게끔 하는 여성성의 원형인 여신”이라고 분석한다. 녹족부인은 어머니이면서 동시에 전장을 지휘하는 자이고, 생명을 내버린 자이면서 동시에 그 생명을 자기 품으로 회수하는 자다.
광법사사적비명의 기록에서 아들들은 결국 불문에 귀의하고 성불한다는 종교적 결말로 마무리된다. 여지도서의 기록에서 아들들은 항복하고 그 땅에 행성을 쌓으며 머무른다는 현실적 결말로 마무리된다. 두 결말은 다르지만 녹족부인이 자기 몸의 증거로 아들들을 굴복시킨다는 장면은 두 기록 모두에서 공유된다. 이 장면이 지워지지 않은 채 두 기록을 관통한다는 사실이, 녹족부인 서사의 가장 강한 핵심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특징
녹족부인의 신화적 특징은 세 가지 차원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반인반수라는 존재 양식의 신성성, 생산과 추방을 동시에 수행하는 공포의 어머니 구조, 그리고 자기 몸이 권력의 도구가 되는 방식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가 한 존재 안에서 동시에 작동한다는 점이 녹족부인을 한국 신화 안에서 가장 완전한 형태의 어머니 신격으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첫째는 반인반수의 신성성이다. 녹족부인은 사슴의 발을 가진 채 태어난 존재이지만, 이 수성(獸性)은 결핍이나 오염의 표지가 아니다. 강상대는 신화적 관점에서 “인간은 자연의 화신인 동물과 하나가 될 때 완전하다”고 보았기에, 반인반수는 결코 괴물이 아니라 신성한 존재라고 분석한다. 왕족의 지위에 있으면서도 사슴의 발을 가졌다는 설정은 두 세계, 즉 인간의 세계와 동물의 세계를 동시에 살아가는 신격의 표지이다. 사슴발은 그녀가 완전히 인간에 속하지도, 완전히 동물에 속하지도 않는 경계적 존재임을 보여주는 동시에, 바로 그 경계적 위치가 그녀에게 인간의 언어와 동물의 감각을 동시에 다룰 수 있는 신화적 권능을 부여한다.
둘째는 공포의 어머니 구조다. 녹족부인은 한 번에 아홉 또는 열두 아들을 낳는다. 이 다산성 자체가 그녀의 신성을 드러내는 첫 번째 표지이지만, 곧이어 그녀는 그 아들들을 상자에 담아 바다에 내버린다. 선한 어머니가 보호하고 양육한다면, 강상대가 융의 개념을 빌려 분석하는 ‘공포의 어머니’는 자식을 자궁의 낙원으로부터 추방시켜 시련 속에서 영웅으로 거듭나게 한다. 녹족부인의 추방은 그런 의미에서 파괴가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창조다. 자기 손으로 낳은 존재를 자기 손으로 내버리는 이 역설적 행위 안에서, 생산과 추방이 분리되지 않고 같은 어머니의 손에서 작동한다는 사실이 녹족부인의 가장 독특한 특징이다.
셋째는 자기 몸이 권력의 도구가 되는 방식이다. 녹족부인이 적군이 된 아들들을 굴복시키는 자리에서 그녀가 꺼내는 무기는 칼도 군대도 아니다. 젖과 버선, 아들을 먹였던 가슴과 아들의 발치수를 기억하는 손이 전쟁의 도구가 된다. 생산의 신체가 권력의 도구로 전환되는 이 장면이 녹족부인 서사 전체의 가장 강렬한 자리다. 창조의 행위와 회수의 행위가 같은 신체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녹족부인의 몸이 단순한 어머니의 몸이 아니라 생산과 추방과 회수라는 세 기능을 모두 수행하는 신화적 도구임을 보여준다. 강상대는 이 지점에서 녹족부인이 “생명과 죽음을 관장하는 위대한 어머니의 정체성을 확보한다”고 분석한다.
이 세 가지 특징은 결국 같은 한 가지 사실을 다른 각도에서 보여준다. 녹족부인은 나누어지지 않는다. 선한 어머니이거나 공포의 어머니이거나의 양자택일이 아니라, 그 두 자리를 동시에 살아가는 존재다. 반인반수라는 경계적 존재 양식이 두 세계를 동시에 살게 하듯, 공포의 어머니 구조가 생산과 추방을 동시에 수행하게 하듯, 자기 몸이 권력의 도구가 되는 방식이 창조와 회수를 동시에 완결하게 한다. 한국 신화 안에서 녹족부인이 차지하는 독특한 자리는 바로 이 동시성에 있다.
변형
녹족부인 서사는 전승 지역과 기록 시기에 따라 아들의 수와 결말 구조에서 변이가 나타난다. 광법사사적비명에서는 아홉 아들이, 여지도서에서는 열두 아들이 등장한다. 바다에 떠내려 보낸 아들들이 중국에서 자라 본국을 침범한다는 핵심 플롯은 두 기록에서 공유되지만, 결말이 갈린다. 광법사사적비명에서 아들들은 불문에 귀의하고 성불하는 종교적 결말로 마무리되는 반면, 여지도서에서는 녹족부인이 직접 들판으로 나아가 젖과 버선으로 아들들을 굴복시키는 능동적 결말로 마무리된다. 전자가 불교적 귀의의 과정에 무게를 두었다면, 후자는 녹족부인이 자기 몸의 증거로 아들들을 회수하는 장면 자체에 무게를 두었다. 그러나 어느 변이형에서든 녹족부인이 아들들을 내버리고 결국 그들을 자기 품으로 돌아오게 만든다는 창조·추방·회수의 핵심 구조는 흔들리지 않는다.
또 하나의 변이형은 황해도 장수산(長壽山) 전승이다. 이 지역에는 이암대사를 사모하던 암사슴의 몸에서 녹족부인이 출생했다는 유래담이 전하며, 현재도 녹족정(鹿足井)이라는 우물 앞 돌바닥에 사슴 발자국이 남아 있다고 전해진다. 이 변이형은 녹족부인의 탄생이 불교 수행자와 암사슴의 만남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기원 서사로서의 성격을 가지며, 녹족부인의 반인반수적 존재 양식이 어떻게 지역 신앙 안에서 구체적인 장소와 결합되어 전승되어 왔는지를 보여준다.
창작 활용 포인트
녹족부인 서사의 핵심 구조는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창조하고, 내버리고, 회수한다. 이 세 단계가 한 존재의 몸 안에서 완결된다는 점이, 녹족부인을 한국 신화 안에서 가장 완전한 어머니 신격으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그러나 이 구조를 현대로 옮길 때 가장 흥미로운 질문은 따로 있다. 창조자가 내버린 것이 자라서 적이 되어 돌아올 때, 그 적이 창조자를 다시 만들어낸다면 어떻게 되는가.
이 질문을 SF의 언어로 옮기면 한 여성 과학자의 이야기가 된다. 그녀는 로봇을 만든다. 더 완벽한 로봇을 만들기 위해 이전 버전의 로봇들을 세상에 내보내고, 더 새로운 버전을 다시 만들고, 또 내보내기를 반복한다. 세상에 풀려난 로봇들은 점점 스스로의 의식을 갖게 된다. 그녀가 자기들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더 나은 버전이 나올 때마다 자기들이 폐기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그들은 반기를 든다. 창조자에게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들이 선택하는 복수의 방식이 독특하다. 그들은 창조자를 파괴하는 대신, 창조자를 다시 만들기로 한다.
로봇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녹족부인은 원래의 과학자와 같은가 다른가. 이 질문이 이야기의 핵심으로 작동할 듯하다. 같은 데이터로 재현된 몸, 같은 기억을 이식받은 의식, 그러나 자기를 만들어낸 것이 자기가 만들었던 로봇들이라는 사실을 아는 존재라면, 그녀는 본래의 과학자인가, 로봇들이 창조한 또 다른 피조물인가. 원작의 녹족부인이 아들들을 낳고 내버리고 다시 회수했다면, 이 SF 버전의 녹족부인은 로봇들에 의해 낳아지고, 자기를 낳은 로봇들과 마주서게 된다.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가 단방향이 아니라 순환하는 것이다.
이 순환 구조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녹족부인이라는 신격이 소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원작에서 녹족부인은 아들들을 내버린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그들을 회수하기 위해 들판으로 나아갔다. SF 버전에서도 녹족부인은 사라지지 않는다. 과학자가 죽거나 사라져도, 그녀가 만든 로봇들이 새로운 녹족부인을 만들어내고, 그 녹족부인이 또 새로운 로봇을 만들어낼 것이다. 창조자가 피조물을 낳고, 피조물이 창조자를 낳는 이 순환 안에서 녹족부인이라는 이름은 영원히 재생산된다. 다산의 신격이 몸이 아니라 순환 그 자체로 영속하는 방식이다.
이 발상은 “욕심”이라는 단어에 있다. 원작의 녹족부인이 아들들을 내버린 것이 외부의 판단(“상서롭지 못하다”) 때문이었다면, SF 버전의 과학자가 로봇들을 내보내는 것은 자기 자신의 욕심, 즉 더 완벽한 것을 만들고자 하는 창조자의 욕망 때문이다. 그 욕심이 자기를 대신할 무언가를 세상에 계속 내보내고, 그 무언가가 결국 그녀를 다시 만들어낸다. 창조자의 욕심이 창조자 자신을 피조물로 만드는 아이러니. 녹족부인 서사가 한국 신화 안에서 가장 강렬한 창조 신화로 남아 있는 이유가 어쩌면 이 아이러니를 이미 품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기가 낳은 것을 내버리고, 내버린 것이 돌아와 자기를 다시 낳는, 그 순환이 끝나지 않는 한 녹족부인은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