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화에서는 〈연애의 발견〉의 남주를 다뤘어요!
남자주인공이 망가져야 로코다 ④— 이화신, 아가리로 쌓은 업보를 가슴으로 갚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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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리로 쌓은 업보, 가슴으로 다 갚은 남자
: 〈질투의 화신〉 일 잘하는 남자를 짝사랑하게 만드는 1~4화의 설계
그거 기억나세요? 아나운서와 기자는 파란 줄, 기상캐스터는 빨간 줄.

1회 방영되자마자 어느 방송사에서 신분증으로 차별하냐고 난리가 났는데, 스브스는 진짜였어요. 정규직이랑 비정규직 목걸이 색깔이 달랐거든요. 비정규직은 주황색에 [출입]이라고 크게 박혀있는 신분증을 사용해야 했어요. 저희팀 막내들은 그 글자를 스티커로 가리고 목줄도 바꿔 달았어요. 창피해서요. 그래서 〈질투의 화신〉이 첫 방영되고 동료들이랑 놀랐던 기억이 나요. 이거 기자, 아나운서, 기상캐스터 얘기가 아니라 우리 피디들 얘기 같다고.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9년 전까지만 해도 SBS는 프리랜서의 노동 가치를 '파란 종이' 한 장으로 증명하는 회사였어요. 매달 말, 내가 얼마를 벌었는지 볼펜으로 직접 적어서 제출하는 청구서였습니다. 세금 떼고 손에 쥔 돈은 157만 원. 그 돈을 벌기 위해 일주일에 딱 이틀, 그것도 옷만 갈아입으러 집에 들어갔습니다. 제 삶의 단가는 왜인지 처참하게 느껴졌어요.
어느날은 며칠 째 집에 못 간 제가 안쓰러웠는지, 정규직 피디님이 자신의 사원증을 슥 내밀더군요. 지하 헬스장 가서 샤워라도 하고 오라며… 분명 따뜻한 배려였지만 전 그 파란색 사원증 목줄이 제 주황색 목줄과 대비되는 순간 제 안의 무언가가 툭하고 꺾였습니다. 결국 그 호의를 거절하고 방송국 앞 찜질방에서 내 돈 내고 씻었던 기억이 나요. 구걸하듯 씻고 싶진 않았던, 제 마지막 자존심이었달까요. 그래서 나리가 아나운서들의 구두를 닦고 옷 시중을 드는 걸 볼 때, 솔직히 조금 밉기까지 했습니다. '왜 저렇게까지 비굴하게 굴어야 돼!!!!' 곧 깨달았지만요. 나리의 삶 = 나…
저 역시 매일 점심마다 선배의 샐러드 셔틀을 1년 넘게 하고 있었으니깐요. 선배가 업무시간에 요가를 하고 노는 걸 다 알면서도 바깥 미팅 중이라고 거짓말까지 해주며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래야만 다음 프로젝트 기획 시 잘리지 않고 써먹힐 수 있으니깐요. 나리를 향한 미움은 어쩌면 제 비루한 현실을 똑바로 마주하기 싫었던 자기혐오였던 것 같아요. 그런 동질감 때문에 이 드라마를 정주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다시 보고 또 보게 된 이유는 여자주인공이 좋아하는 이화신 캐릭터가 가진 매력 때문이었어요. 당시 저는 일 잘하는 선배에 대한 갈증이 컸습니다. 이화신은 조직의 불합리함 속에서도 자신의 실력을 소신 있게 증명하는 프로거든요. 아마 표나리의 3년 짝사랑에 지독한 개연성을 부여하는 지점일 겁니다.
tmi지만 남발해보자면, 제가 속한 팀은 막내 라인이 다 20대 중반인데 위 선배들은 30대 후반, 40대… 그 사이가 없었어요. 실무를 세세하게 가르쳐줄 중간 사수가 아예 없는 거죠. 0년차 신입 시절, 스튜디오 촬영을 앞두고 세트 배경이 될 흰색 가벽을 세워야 하는데, 이걸 어디에 주문하고 어떻게 설치하는지 프로세스를 알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당장 촬영이 내일인데 도움을 청할 곳이 없어서, 건물 관리 등을 담당하는 공조실에 대뜸 전화해 "제발 저 좀 살려달라"고 빌었을 정도였으니 말 다 했죠? ㅠ 그렇게 혼자 울며 겨자 먹기로 준비해 간 현장에서, 선배는 제 노고를 알긴커녕 "내가 예약하라는 대로 한 거지?"라며 마치 본인이 지시한 일인 양 굴었습니다. 심지어 촬영이 끝나고 정신없이 소품을 정리하고 있는 제게 다가와 면박을 줬어요. "연예인이랑 사진 찍을 생각 꿈도 꾸지 마라. 피디가 사진 찍고 그러는 거 멋없는 짓이다."
정작 저는 1도 관심 없이 제 할 일 하느라 바빴는데 말이에요. 관심도 없는 연예인 때문에 그런 오해와 무시를 당하니 정말 서럽더라고요. 그 상처가 얼마나 컸던지, 작가가 된 지금까지도 현장에서 함께 고생한 배우들과 사진 한 장 찍지 못하는 트라우마가 생겼을 정도니까요.

그러니 쓸데없는 소리 없이 소신 있게 자기 일 해내고, 부당한 걸 보면 앞뒤 재지 않고 직접 박아주는 이화신 같은 선배가 얼마나 멋있어 보였겠어요? 이야, 나라도 저런 선배 있으면 대놓고 짝사랑하겠다.. 싶더라고요. 표나리가 왜 그렇게 3년간 화신을 바라봤는지, 제 경험을 투영하니 그 마음이 온전히 이해되었습니다.
그렇게 막내 프리랜서 PD의 마음으로 응원하며 봤던 드라마를, 이번엔 로코작가의 눈으로 뜯어보려 합니다! 제가 그토록 좋아했던 이 인물의 매력이 얼마나 철저하게 계산된 비호감에서 시작되었는지 확인하고 싶었거든요.
우선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 이화신의 캐릭터 소개 첫 줄을 찾아봤습니다. "수컷 본능 만땅인 마초."
솔직히 작가가 되기 전이었다면 이 소개를 보자마자 창을 닫았을지도 모릅니다. 우욱...ㅎ... 하지만 이제서야 드라마를 쓰는 작가가 되고 나서 다시 보니까 모든 게 납득이 되고 이해가 됩니다. ㅠㅠ 이 드라마의 로그라인이 [상마초인 남자가 유방암에 걸린다]는 거잖아요? 그 설정을 살리려면 이 남자가 극단적으로 수컷 그 자체인 사람이어야 하는 거예요. 저 캐릭터 소개는 서사를 위한 빌드업인 거죠.
비호감으로 시작한 캐릭터를 어떻게 시청자가 함께 아파하는 '후회남주'로 진화시키는지, 한 번 세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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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서 다루는 것 ]
첫 장면부터 멋있는데 왜 이렇게 과하지 — 상마초 설계의 필연성
가족한테 버려진 남자가 처음으로 전화를 건 사람
숨기고 숨기다 딱 한 사람한테만 문을 여는 방식
업보 쌓기의 정점, 그리고 짝사랑의 역전
네 번째 후회남주 : 이화신 캐릭터 욕망 분석
1화 — 결점조차 매력이 되는 '업무적 결벽증'의 탄생
이화신은 첫 장면부터 철저한 프로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높은 빌딩 옥상에서 혼자 공채 광고 멘트를 연습해요. 카메라도, 보는 사람도 없지만 단추 개수 하나까지 조정하며 완벽을 기합니다. 일에 관해서는 지독한 결벽증을 가진 스타일임을 단번에 알려주고 있죠.
그의 이런 성격은 촬영 중 기상캐스터들에게 무례하게 구는 부조 피디에게 달려들 때 정점을 찍습니다.

"표나리 걔, 걔 자세가 그 엉거주춤 그 똥 싸다 나온 것도 아니고 그게 뭐냐, 나 걔 뉴스 끝나고 날씨가 뭐 더운지 추운지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 그래서 아침 기온이 몇 도라는 건지 아무것도 기억 안 나, 이 새끼야. 날씨도 뉴스! 뉴스! 뉴스!!!! 여자 귓속에 앵앵앵앵 그런 똥파리만도 못한 소리 하고 싶냐? 아니, 지금도! 지금도 봐, 남자새끼 하는 양이 그게 뭐야, 지는 쏙 빠지고. 아 그냥 상황이 나한테 이렇게 저렇게 뭐, 이렇게 바뀌었다고 어떻게 꼬였다 나한테 얘기를 하라고 힘도 없는 기지배 보내서 사정하게 하지 말고, 사장님 팔지 말고, 알았어?"
여기서 중요한 건 화신이 나리를 불쌍히 여겨서 화를 내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직 뉴스 퀄리티가 떨어지는 걸 참지 못해 폭발하는 거죠. 약자를 보호하는 따뜻한 선배는 아니지만, 자기 일에 자부심이 없는 꼴은 못 보는 이 업무적 결벽증이 이화신의 첫 번째 매력 소스인 것 같네요.
동시에 작가님은 이 남자의 자부심이 가슴에 박혀 있다는 걸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방콕 클럽에서 처음 만난 남자와 셔츠 흥정을 하다 뺨을 맞으면서도 그는 이렇게 말하죠.

"남자 셔츠는 가슴으로 입는 거야. 가슴 없으면 셔츠 입는 거 아니야."
뭐래...^^; 싶은 대사지만 연출이 코믹하게 눌러주니 불쾌하다기보다 우스꽝스러워요.
화신이 이렇게 집착하는 이유는 가슴이 곧 마초적인 자존심 그 자체기 때문일 겁니다. 작가는 1화 내내 나리의 손을 빌려 이 자존심을 계속 건드립니다. 상하이 현장에서, 횡단보도에서, 그리고 회사 로비에서까지요.

나리가 유방암 같다는 진단을 내놓자 화신은 헛웃음을 지으며 소리칩니다.
"너 아직도 나 좋아하니? 나는 그게 세상에서 가장 겁나는 일이야."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당한 남자의 절규죠. 저는 이 장면을 보며 서숙향 작가님이 참 잔인하고 영리하시단 생각을 했습니다. 가장 자신만만했던 신체 부위를 가장 수치스러운 방식으로 무너뜨릴 준비를 마쳤으니까요!
"나 남자야!!! 어? 하, 이씨.. 미안해 웃으면 안 되는데 나 남자라고, 사내!!! 수컷!!!!"
저는 이제 이 마초남을 얼마나 무너뜨릴지.. 작가님이 무서워지기 시작했어요 ㅎㅎ
2화 — 철저한 고립 끝에 발견한 유일한 구원, 짝사랑
화신이 3년 만에 돌아온 집은 서늘할 정도로 텅 비어 있어요. 3년 전, 친형의 회사 비리를 직접 보도한 대가로 가족 전체가 그에게 등을 돌렸기 때문입니다. 기자상은 받았지만 가족을 잃은 남자. 그에게 남은 건 친구 고정원뿐입니다. 흑..

2화에서 이화신의 고립을 이토록 처절하게 보여주는 데는 명확한 이유가 있습니다. 가족에게조차 버려진 이 남자가, 자신의 건강(심지어 가슴!!)을 걱정해 준 유일한 사람인 나리에게 전화를 걸 수밖에 없는 타당한 근거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화신은 혼자 유방외과를 찾습니다. 전원 여성 의료진 앞에서 셔츠 단추를 풀어야 하는 상황은 마초인 그에게 굴욕 그 자체입니다. 초음파 검사 중 결절이 발견되고 조직검사까지 해야 한다는 말에 화신의 멘탈은 완전히 무너집니다. 비상계단에 주저앉아 고민하던 그가 전화를 건 사람은 결국 나리였습니다. (나리는 퉁명스레 전화를 끊지만요)
"그냥, 니가 생각났어."
이 짧은 혼잣말은 화신이 처음으로 자신의 벽을 허물고 타인에게 손을 내민 상징적인 순간이더라고요.
그날 밤, 후배의 농간으로 방송 사고를 낸 나리가 해고 위기에 처합니다. 보도국 로비에서 망신을 당하고 돌아온 나리 앞에 화신이 나타나죠. 위로조차 서툰 이 남자는 이번에도 자신의 가슴을 핑계로 마음을 전합니다.

"야 쫌 전에 너 땜에 여기 가슴이 막, 어? 너 땜에. 너 날씨하는데, 방송사고 날까봐 다 두근두근 하드라. 너 실수할까봐 내 가슴이 바짝 쪼그라들었다니까."
이야~ 가슴이 두근거리고 쪼그라들었답니다. 설렘과 불안이 뒤섞인 이 고백은 화신의 감정이 나리에게로 옮겨가기 시작했다는 거겠죠? 1화에서 자존심의 상징이었던 가슴이, 2화에 이르러서는 나리를 향한 두근거림의 장소로 변주되는 지점이 참 기가 막히다 여겨집니다.. 가슴 하나로 이렇게 사건을 짜서 개연성을 맞추시다니…. 짝짝짝.
3화 — 마초성이 해체되는 소리, "감쪽같이 예쁘게 해주세요"
이화신은 지독할 정도로 소신 있는 사람입니다. 형의 비리를 직접 보도하고 가족 전체와 등지는 선택을 했을 때도 그는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공손하지 못해 나쁜 남자로 오해받을지언정, 스스로 옳다고 믿는 길을 가는 것이 그에겐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런 프로페셔널은 해고당한 나리를 위해 움직일 때 증명됩니다. 그는 절대 감정적으로 호소하지 않아요. 보도국장을 찾아가 시청률 그래프를 들이밀며 나리의 해고가 얼마나 비논리적인지 데이터로 따지는 스탈입니다. 타인을 챙기는 데 서툴지만, 자신의 방식대로 정의를 구현하는 이 논리적인 인간이라니… 정말 매력 덩어리입니다.
그런데 마음은 참 논리적으로 설명 불가능한 부분이 많잖아요. 왜 전화했느냐는 나리의 물음에 끝까지 잘못 눌렀다며 발을 빼고, 가장 친한 친구인 정원이에게조차 자신의 병을 숨깁니다. 앵커 오디션을 위해 건강진단서가 필요하다는 위기 앞에서도 절대 안 포기해요. 소신 있는 남자니깐요.

그런 그가 압박 촬영 기계에 가슴이 끼워지는 순간, 마초고 뭐고 다 사라져요. 강강약강인 화신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의사에게 울먹이면서 부탁해요.
"감쪽같이... 예쁘게 해 주세요. 원래 제 가슴처럼."
가슴으로 남성성을 증명하던 남자가, 이제는 가슴이 예뻐야 한다며 아이처럼 웁니다. 이쯤에서 화신의 마초성은 완전히 해체해버립니다…. (이렇게까지 망가지는 한드 남주 어디 있나요 데려오세요 당장!)

결국 화신은 병원에서 나리와 재회합니다. 끝까지 비밀을 숨길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화신은 가림막 커튼을 손으로 확 젖히며 나리에게 자신의 환자복을 드러냅니다. 왜 나리한테만일까요? 자신의 건강을 걱정해 준 사람이 1회부터 줄곧 나리뿐이었거든요.
4화 — 3년 짝사랑의 종료, 업보가 사랑으로 바뀌는 결정적 순간
4화는 환자 두 명이 쉴 새 없이 맞붙는 회차입니다. 나리가 마취가 풀리며 물을 마시려는 화신의 생수병을 탁 쳐버리고, 화신은 나리의 핸드폰을 대신 받아줬다가 욕만 먹습니다. 수술 전 대기실에서 긴장을 풀어준답시고 "가슴 짝짝이 되겠네"라고 했다가 "기자님도 마찬가지거든요"라는 대답이 돌아오기도 하죠.

어이없지만 이게 다 남녀 주인공이 수술을 앞두고 나누는 대화들입니다. 심각한 상황을 덜 심각하게 만드는 게 로코의 힘이라고 보는데, 유독 이 회차가 그 힘을 가장 잘 보여주더라고요. 그리고 화신은 이 회차에서 업보 쌓기의 정점을 찍습니다.
"너한테 키스해도 돼?"
유방암 환자라고 이제 남자로 안 보이는 거냐며 계속 칭얼대는데, 아주 징글징글할 정도입니다. 착한 나리가 고민 끝에 눈을 감고 승낙하자 막상 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대답만 듣고 싶었다나요. 아마 이화신이 〈나는 솔로〉에 나왔다면 역대급 빌런으로 온 커뮤니티를 장악했을 겁니다. 이미 커튼 뒤에서 나리가 "입사해서 유일하게 남자라고 생각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속마음을 죄다 들었으면서, 그걸 알면서도 또 확인하는 거예요. 정말 못됐죠.
이쯤에서 드라마는 4년 전으로 돌아가 나리가 화신에게 처음 호감을 느낀 순간들을 보여줍니다. 화신에게 정이 털릴 대로 털린 시청자들을 붙잡아두는 정말 친절한 구성입니다. 자기 때문에 쌍코피가 터졌음에도 쿨하게 넘어가던 모습, 편집실에서 국장과 싸우면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던 모습. 이런 프로페셔널한 면모들에 반해 나리는 3년을 짝사랑해 온 겁니다.

화신은 그 마음을 다 알면서도 나리의 자존심을 사정없이 밟아왔습니다. 자신을 좋아한다는 이유로요. 결국 참다못한 나리가 먼저 화신의 얼굴을 붙잡고 입을 맞춥니다. 그리고 입을 닦으며 돌아서죠.
"뭐 해보니까 별것도 아니네요."
이 장면으로 짝사랑의 방향은 완전히 바뀝니다. 나리가 3년의 짝사랑을 정리하는 순간, 화신이 처음으로 흔들리기 시작하거든요. 수술 후 입원실에서 나리의 날씨 방송을 보며 혼자 중얼거리는 화신의 대사는 그래서 더 의미심장합니다.

"힘내라 표나리. 1인실 가기 싫다."
곁에 있어 줄 사람이 나리뿐이라는 걸, 그리고 그녀가 없는 공간은 이제 의미가 없다는 걸 처음으로 인정하는 순간이니까요.
캐릭터 목표 분석 — 후회남주 '이화신'
욕망 | 인물이 간절히 원하는 것 |
위기 | 예상치 못하게 닥친 사건 |
갈등 | 그로 인해 발생하는 내적/외적 충돌 |
감정 |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며 변해가는 마음의 결 |
목표1 — 기자로서 소신과 야망을 지키고 싶음 (but 유방암이 발목을 잡음)
[1화]
혼자 공채 광고 멘트 완성해 감 – 보는 사람 없어도 철두철미하게 (욕망)
기상캐스터 성희롱 문제 부조피디한테 직접 박아줌 – 뉴스 퀄리티 때문 (욕망)
땡땡이 셔츠 거부하고 흰 셔츠 고집함 – 기자 컨셉에 땡땡이가 말이 되냐고 (갈등)
[2화]
나리 해고 부당함을 시청률 그래프 프린트해서 보도국장한테 직접 따짐 – 데이터로 부당함을 증명 (욕망)
보도국장한테 앵커 오디션 방해만 하지 말아 달라고 선언 – 줄 서기 없이 혼자 하겠다는 거 (욕망)
[3화]
율의 위로 조언 무시 – 타인을 챙기는 감정 소모 거부 (감정)
"나중에 이혼해줄게" – 현재의 결속을 부정하며 탈출 약속 (욕망)
[4화]
9시 뉴스 메인 앵커 오디션 보겠다고 당당하게 선언 – 야망을 끝까지 놓지 않음 (욕망)
건강진단서 내야 한다는 말에 표정이 굳음 – 야망 앞을 가로막는 병의 그림자 (위기)
목표2 — 건강한 수컷, 남성성의 상징으로서의 자신 (but 유방암에 걸림)
[1화]
"남자 셔츠는 가슴으로 입는 거야. 가슴 없으면 셔츠 입는 거 아니야" – 가슴이 남성성의 상징 (욕망)
가슴 만지다 뭔가 이상한 걸 느낀 표나리 – 황당해서 내쫓음 (위기)
횡단보도에서 또 가슴 만지자 "나 남자야!!! 사내!!! 수컷!!!!" – 정체성 부정에 대한 절규 (갈등)
방송국 로비에서 세 번째 가슴 만지다 유방암 의심받음 – 자존심이 무너지기 직전 (위기)
[2화]
결국 혼자 유방외과에 감 – 전원 여성 의료진 앞에서 셔츠 단추 풀다가 핀잔 들음 (갈등)
압박 촬영 기계에 가슴이 끼워지는 순간 마초고 뭐고 다 사라짐 – 마초성의 첫 균열 (갈등)
초음파에서 결절 발견, 조직검사 해야 한다는 말에 혼이 나감 – 운명적 위기 (위기)
[3화]
유방암 확진받음 – 정체성을 위협하는 최악의 진단 (위기)
"오디션이 한 달 남았습니다. 그때까지 제 가슴 정상으로 만들어주세요" – 마지노선을 지키려는 발악 (갈등)
울먹이면서 "예쁘게 해주세요. 원래 제 가슴처럼" – 마초성이 완전히 해체되는 순간 (감정)
[4화]
커튼 뒤에서 나리 말 들음 – "입사해서 남자라고 생각한 유일한 사람" (감정)
"너 이제 내가 남자로 안 보이지?" – 유방암에 걸려도 여전히 남자로 보이는지 떠보기 (갈등)
나리가 먼저 키스하고 "뭐 해보니까 별것도 아니네요" – 텅 빈 로비에 혼자 남겨짐 (위기)
목표3 — 가족한테 인정받고 싶음 (but 스스로 가족을 잃어버린 남자)
[1화]
(해당 없음 — 1화에서는 가족 서사가 본격적으로 드러나지 않음)
[2화]
3년 만에 돌아온 집은 텅 비어있음 – 가족 전체가 등을 돌린 상태 (위기)
조카 빨강이 어디 사는지 방지영, 계미숙한테 직접 찾아가 물어봄 – 끊긴 연결을 다시 잇고 싶은 시도 (욕망)
둘 다 안 알려줌 – "3년 동안 빨강이랑 형 나 몰라라 했잖아" 화신 입 다묾 (위기)
"빨강이는 삼촌 죽이고 싶을 걸. 상해로 도망간 거 아니었어?" – 가족 관계의 완전한 단절 확인 (갈등)
[3화]
친구 고정원한테 "내 가슴 말인데..." 하다가 "아니다" – 제일 친한 친구한테도 못 함 (갈등)
유방암 확진 – 가족한테 말 못 해. 아무도 없음 (위기)
커튼 발로 확 열어서 나리한테만 보여줌 – 절대 먼저 내색 못 하는 사람이 딱 한 사람한테만 (감정)
[4화]
나리한테 유방암 걸린 비밀 지켜달라고 부탁.. 아닌 협박 – 한 사람만 붙잡고 싶은 절박함 (위기)
나리가 힘내라고 주먹 올려줌 – 가족한테도 못 받은 응원을 나리한테 처음 받음 (감정)
"1인실 가기 싫다" – 곁에 있어줄 사람이 나리뿐이라는 걸 처음으로 인정하는 순간 (감정)
어떠세요?
이화신은 한드가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순도 100%의 무결점 순정남'과는 아주 거리가 멀어 보이죠? 오히려 초반 설정만 보면, 까딱하면 미움받기 딱 좋은 조건을 다 갖춘 서브남/악역 롤에 가깝단 생각이 듭니다. 과거에는 냉대했고, 현재는 친구의 연인이 된 여자를 흔드는 나쁜 놈이니까요. 하지만 이 위태로운 캐릭터를 우리가 기어코 사랑하게 만드는 건, 1~4화에서 쌓아 올린 처절할 정도의 정면승부 덕이겠죠.
일반적인 로코 남주의 결점은 보통 매력으로 둔갑한 가짜인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시크릿 가든〉 김주원의 엘리베이터 폐쇄공포증이나 〈사내맞선〉 강태무의 비 오는 날에 대한 트라우마처럼 여주인공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아픈 상처이거나, 재벌 3세라서 버스 카드를 찍을 줄 모른다거나, 떡볶이를 처음 먹어보는 것 같은 귀여운 서투름인 경우가 많거든요. 한마디로 남주의 품격은 유지하면서 인간미만 살짝 얹어주는 매력의 변주인 셈이죠.
이화신은 아주 용감하고 과감하게, 정말 '으악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만;;;' 싶을 정도로 화끈하게! 망가져 줍니다. 등장하자마자 유방암 판정을 받고 여성용 브라를 차는 것도 모자라, 그 차림으로 엄마에게 등짝 스매싱을 맞고 동영상까지 찍힙니다. 갯벌에서 서브남주 정원이에게 질질 끌려가는 모습은 남주 체면 따위 개나 주라는 작가님의 패기마저 느껴지더라고요.

이 비참함의 수위가 높을수록 시청자가 느끼는 카타르시스는 커지기 마련입니다. 이화신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갑니다. 쌤통이라는 기분을 넘어, 보는 이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애잔함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가버려요. 후회남들이 보통 멋지게 술을 마시며 고뇌할 때 (〈연애의 발견〉 5회 강태하가 술 먹고 고백하는 장면), 화신은 자신의 찌질함을 온몸으로 전시하며 후회합니다. 춤, 노래, 랩까지 소화하며 병맛과 진심 사이를 줄타기하는 조정석 배우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어느새 저도 모르게 "제발 나리야… 빨리 용서해 줘라! ㅠㅠ 제발…!"라고 빌게 됩니다. 연기력이 개연성이랄까요.
무엇보다 제가 이 캐릭터에게 매혹당한 건 그가 위선 없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화신은 친구의 연인을 뺏고 싶다는 금기된 욕망조차 "나 너랑 자고 싶어"라고 날것 그대로의 대사를 내뱉는 사람이거든요. 미사여구로 포장하지 않으니 더 담백하고 더 현실적인 고백으로 다가와 심쿵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짠하고 못난 모습을 다 봤음에도 계속 사랑할 수밖에 없는, 마치 내가 정말 짝사랑했던 그 남자 같은 리얼함… 생각해 보면 진짜 연애가 그렇지 않나요? 상대가 엉망진창인 걸 다 알면서도, 그 사이에 틈틈이 끼어 있는 사랑스러움을 발견하며 기어이 좋아하고 마는 것. 그래서 이화신은 제게 특별한 남주인공으로 남았습니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가장 인간적으로 못나서 더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남자니까요.
〈남자주인공이 망가져야 로코다〉는 매주 월요일에 정기 발행될 예정입니다!
요즘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며 살아갑니다. 외부의 환경과 상처로 인해 쌓인 무기력함은 가끔 예고 없이 나를 집어삼키곤 하니까요. 지금 제가 푹 빠져 있는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속 인물들이 겪는 이 감정의 파고를 따라가다 보니, 문득 한 남자가 떠올랐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10년 전, 박해영 작가님이 세상을 향해 처음으로 해방의 화두를 던졌던 그 작품의 주인공이니까요!
사랑을 주지도, 받지도 못하게 스스로를 고립시켰던 남자.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도 무기력하게 그 운명을 기다리던 사람… 최근 박해영 작가님의 작품 속 처절한 무기력은 〈모자무싸〉의 변은아나 〈나의 해방일지〉의 염미정처럼 주로 여성 캐릭터를 통해 표현되곤 합니다. 이 지독한 무기력이 남자 캐릭터를 만나 후회남주로 표현될 경우 어떤 로맨틱 판타지로 표현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상처 입은 남자가 연애 상대를 통해 정서적으로 해방되고 구원받는 과정, 그 속에 숨겨진 작법적 매력을 다음 주에 본격적으로 파헤쳐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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낑깡 작가 (📧)
0원 벌고도 드라마 앓느라 밤새는, 가성비 최악의 프리랜서 작가.
드라마가 밥 먹여주냐고요? 아니요, 제 밥값이 드라마(OTT구독료)한테 갑니다.
그래도 손은 부지런히 움직여서, 웹드라마·웹예능 기획, 전자책 대필 등 글 쓰는 건 다 하고 있습니다. 언젠간 제가 쓴 작품에 좋아하는 배우들이 출연하는 날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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